이대목동병원(서울 양천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좌우가 뒤바뀐 엑스레이 필름’ 사건은 환자들이 유명 대학병원에 기대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환자 안전 인증평가를 앞두고 병원 쪽이 중대한 의료 과실을 덮으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대목동병원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4월 말까지 이비인후과·소아과·내과·가정의학과로 내원한 환자 578명의 코 엑스레이 필름 영상의 좌우를 바꾸어 표시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방사선실에서는 이를 알지 못한 채 병원전산시스템에 영상을 전송했고, 의사들은 좌우가 바뀐 영상을 보며 환자들을 진료했다.
전체 환자 578명 가운데 한쪽 코에만 문제가 있었던 사람은 123명이다. 이 가운데는 어린이도 23명 포함돼 있다. 이들은 좌우가 바뀐 영상을 본 의사의 진단과 소견에 따라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 환자는 왼쪽 콧구멍에 문제가 있다고 병원을 찾았는데 엉뚱하게 오른쪽 콧구멍을 진료한 셈이다. 455명은 양쪽 콧구멍에 모두 축농증 등이 있거나 별문제가 없는 환자였다.
넉달 동안 중대 의료 과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병원이 뒤늦게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은 ‘시스템’ 덕이 아니라 순전히 우연이었다. 병원은 광대뼈에 쇠를 박은 수술 환자의 엑스레이 영상을 보다가 실제 쇠의 위치와 영상에 나타난 쇠의 위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문제를 알아차렸다. 병원 쪽은 “환자의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난해 12월부터 가슴(폐) 엑스레이를 찍는 촬영실에서 코도 함께 촬영하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병원 쪽은 가슴 엑스레이는 좌우 폐의 위치가 ‘사전 세팅’돼 있기 때문에 영상이 뒤바뀌는 사고는 없었다고 했다. 좌우 세팅이 안 돼 있던 코의 경우, 촬영 전 좌우 표시를 별도로 해줘야 했는데 이를 걸렀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엑스레이 필름 영상의 좌우가 바뀐 환자들 가운데 중증 환자는 없다고 판단해 환자들에게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연락을 하면 걱정만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진료를 한 4개 진료과목 의사들이 이런 사실을 넉달씩이나 몰랐던 것을 두고는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육안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했다.
병원은 방사선사와 방사선실장만 시말서를 쓰도록 하는 선에서 의료 과실에 따른 징계를 ‘조용히’ 끝냈다. 이 병원은 지난 16~20일 국제의료기관평가위원회(JCI)의 방문 평가를 통해 환자 안전 시스템 등에서 국내 최초로 재인증을 받았다고 홍보했다. 엑스레이 필름 영상의 좌우가 바뀌는 황당한 의료 과실이 사전에 드러났다면 재인증을 받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의료법에는 의료진의 과실을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보건복지부 쪽은 “무자격자가 아닌 정상적인 의료진이 과실을 저지른 뒤 인지하지 못한 경우에는 현행 의료법에 적용 가능한 조항이 없다. 대신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면 의료분쟁조정제도를 통해 피해를 배상하는 절차를 거칠 수 있다”고 했다.
의료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윤태중 변호사(법무법인 태신)는 “병원의 잘못이 맞는데, 병원의 (대응) 태도에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서울에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운영하는 한 전문의는 “일반적으로 한쪽 콧구멍에 문제가 있어도 치료는 양쪽을 함께 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대형병원에서 환자 수백명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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