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2억원, 선고유예·집행유예=1억원, 3년 이하 징역=5000만원….
최근 한 대형 법무법인(로펌)과 의뢰인 사이에 벌어진 성공보수금 지급 소송을 통해 드러난 ‘성공보수’의 실태다. 이 법무법인은 2002~2010년 평검사 생활을 한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이런 성공보수 조건을 제시했다.
노아무개(48)씨는 이동통신회사 재무팀장이던 2006년 9~10월 거래관계 유지를 대가로 증권사 간부들한테서 11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2011년 6월 구속 기소됐다. 배임수재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노씨의 아내는 10대 로펌 안에 드는 로고스 법무법인에 사건을 맡겼다. 변호사 4명이 선임계에 이름을 올렸는데, 검사 경력 8년인 변호사가 변론을 주도했다. 우선 착수금 3000만원을 줬다. 수사 단계에서 불기소 또는 약식기소 처분을 받으면 2억원을 얹어 주기로 했다. 기소돼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아도 그만큼 더 주기로 했다.
성공보수 지급 기준은 더 세밀한 부분까지 나아갔다. 유죄라도 실형을 면하는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받으면 1억원을, 재판 도중 다른 이유로 석방돼도 1억원을 주기로 했다. 그보다 상황이 나빠져 3년 이하의 징역형 실형을 선고받거나, 검찰 구형량의 절반 이하 형량을 받으면 5000만원을 주기로 했다. 별도의 30억원 수수 혐의에 대해 검찰이 불입건 처리하면 5000만원을 준다는 특약도 맺었다.
이런 조건은 다른 대형 로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로고스 법무법인과 계약을 맺기 전 알아본 ㅂ법무법인도 착수금 2000만원에 무죄 성공보수 1억7000만원, 별도 사건 불입건시 5000만원을 요구했다.
재판에서는 노씨에게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증거 불충분으로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정선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2년 9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별도의 30억원 금품수수 혐의도 불입건으로 끝났다. 따라서 노씨가 줘야 할 성공보수는 무죄 선고에 따른 2억원과 별도 사건 불입건에 따른 5000만원을 더해 2억5000만원이었다. 그런데 노씨가 9000만원만 주자 로고스 법무법인은 성공보수금 지급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5부(재판장 이성구)는 지난달 20일 “노씨는 성공보수금 1억5750만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씨는 성공보수가 부당하게 많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노씨를 제외한 공범 7명에게 모두 유죄가 선고됐고, 노씨도 무죄가 명백하거나 쉽게 무죄 판결을 받을 사건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변호인은 구속된 노씨를 반년간 수시로 찾아가 자료를 수집하고 증인신문을 통해 증인의 증언을 탄핵하는 방법으로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려고 상당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단 별도 금품수수 사건은 변호인의 실질적 활동이 없었다고 보고 성공보수를 5000만원에서 2500만원으로 깎으라고 했다. 재판부는 노씨가 이미 준 성공보수금은 빼고 부가가치세는 더해 추가 지급액 총액을 1억5750만원으로 산정했다. 대체로 성공보수를 변호사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인정한 판결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대형 로펌이 평검사 출신 ‘전관’의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2억원 정도로 부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유무죄 판단뿐만 아니라 판사와 검사의 재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형량·집행유예·선고유예·약식기소 여부·구형량을 놓고도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돈이 성공보수란 명목으로 오가는 실태가 거듭 확인됐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