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검, 벌금 300만원
부당수임 판단 첫 사례
부당수임 판단 첫 사례
대법관 재임 당시 판결한 사건과 사실상 동일한 사건을 퇴임 이후에 수임했다가 고발당한 고현철(67) 전 대법관이 약식기소됐다.
서울고검은 고 전 대법관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 사건을 재수사한 끝에 그를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고 3일 밝혔다. 검찰이 같은 사건이 아니어도 쟁점이 같으면 사실상 동일 사건으로 간주해 부당한 수임이라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단은 정국정(51)씨 사건이다. 엘지전자 사내 비리를 회사 감사실에 제보했다가 따돌림을 당한 끝에 2000년 해고당한 정씨는 중앙노동위원회가 “해고가 정당하다”고 결정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2004년 당시 고현철 대법관은 이 사건 상고심을 맡아 ‘상고 요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상고 기각(심리불속행) 판결을 했다.
고 전 대법관은 2009년 퇴임해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로 옮긴 뒤, 정씨가 엘지전자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소송에서 회사 쪽 변호를 맡았다. 정씨의 해고가 정당한지를 다투는 사건의 행정소송에서는 재판장으로, 민사소송에서는 한쪽의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한 것이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재직 시 취급한 사건’의 수임을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와 정씨는 2012년 고 변호사를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동일한 내용이라도 민사와 행정 소송은 별개 사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참여연대와 정씨는 이에 불복해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두 사건이 사실상 쟁점이 동일하므로 실체가 같다고 봤다. 다른 나라 입법례와 관계 기관의 해석도 동일하다”고 말했다. 2007년 전아무개 변호사가 판사 시절 판결한 사건의 항소심에서 당사자 변호를 맡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전례가 있다.
고 변호사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검토해온 대한변호사협회는 검찰의 약식기소가 이뤄진 만큼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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