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형상화한 디자인 제품과 먹거리를 파는 디자인숍 겸 카페인 ‘왓집’.
90년대 쇠락해 썰렁한 뒷골목
고향 살리려 돌아온 사람들이
영화제·갤러리 등 열자 ‘꿈틀’
고향 살리려 돌아온 사람들이
영화제·갤러리 등 열자 ‘꿈틀’
제주도의 ‘칠성통’을 아시나요?
칠성통(칠성로길)은 제주시 일도1동주민센터 인근의 상점가를 말한다. 동문로터리 분수대 옆 골목에서부터 제주우체국까지 이어지는, 길이 500m 남짓한 길이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좁은 이 골목은 현재 옷가게들로 채워졌다. 지난 25일 밤 9시. 상점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자 골목은 쓸쓸한 적막에 싸였다. 낮에도 찾는 이들이 별로 없어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3000장이 넘는 엘피를 보유한 라이브카페 ‘스페이스 말리’만 외롭게 노랫가락을 울린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칠성통은 제주도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였다. 내로라하는 제주 멋쟁이들의 아지트였고, 갤러리를 겸한 음악다방, 민속주점, 극장, 레코드가게의 화려한 조명이 빛났다. 제주가 고향인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씨는 “당시 칠성통은 문화의 중심지였다”고 증언한다. 주로 부두를 통해 유입됐던 외지인들이 90년대 중반부터 공항을 통해 들어오면서 칠성통은 서서히 쇠락의 길에 들어선다. 공항에서 가까운 노형동, 연동, 아라동 등의 신제주 지역은 개발됐고 칠성통 일대는 구제주가 됐다. 2009년 제주대 부속병원이 신제주로 이전하면서 빈집이 느는 등 쇠퇴의 속도가 빨라졌다.
“2007년에 돌아와 보니 칠성통은 폐허 같았다. 어린 시절 <로마의 휴일>, <벤허>를 봤던 그 거리가 아니었다. 다시 살리고 싶었다.” 칠성통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영림(53)씨는 1980년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2011년 그는 12년간 프랑스 유학 생활의 경험을 살려 무료영화제인 ‘제주프랑스영화제: 봄날의 랑데부’ 첫회를 열었다. 제주가 고향인 외지인들과 거주민들을 설득해 운영자금으로 130만원을 모았다. 일부 지역민들은 믿지 못하겠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영화제는 성공적이었다. 올해 11월이면 5회를 맞는다. 요즘 그가 집중하는 행사는 ‘제주시 원도심 옛길 탐험: 기억의 현장에서 도시의 미래를 보다’다. 고씨만이 아니다. 고향인 칠성통을 떠났던 많은 이들이 마치 연어처럼 돌아와 거리 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칠성통과 붙어 있는 골목에는 1971년에 문 연, 고색창연한 대동호텔이 있다. 주인 박용철(78), 강정자(74) 부부의 딸 박은희(45)씨도 “육지에 살다” 2009년 칠성통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미국 등을 유학했다. 육지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한 박씨는 2012년 호텔의 1층에 갤러리 비아아트를 열었다. 1년에 3번 열리는 전시에 재래시장의 상인들까지 찾아왔다. “한복을 곱게 입고 여행 온 할머니가 호텔에 들어서면서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나요?’ 물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아직 있다. 칠성통은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이 많았던 거리다. 돌아와 보니 어둡고 황폐한 낯선 곳이 돼 있었다.” 그가 갤러리를 열자 “골목이 밝아졌다”는 지역민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이들을 두고 ‘돌아온 칠성통 키드’라 부른다. 서울에서 건축잡지 편집장을 하는 등 20여년간 외지 생활을 하다 2011년 칠성통으로 돌아온 신창범(49)씨가 붙인 이름이다. 그는 수십년 방치된 폐가를 살려 ‘판게스트하우스’를 2012년에 열었다. 그도 칠성통 살리기에 나선 ‘칠성통 키드’다. “자본은 지역의 과거 기억과 상관없이 개발에 몰두한다. 옛 기억이 재생되어 현재로 이어져야 도시(원도심)가 살아난다”고 말한다. 그가 게스트하우스를 열자 현재를 기억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인근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모여라, 칠성통 키드들’ 모임을 만들었다. 12~15명이 모여 지역발전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현재는 구성원들의 개인 사정으로 모임은 없어졌지만 맺어진 인연은 칠성통에 스며들었다. 신씨는 ‘제소다’(제주 소셜다이닝) 모임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칠성통에 문화의 숨결이 조금씩 살아나자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20~30대 토박이들도 날아들었다. 지난해 4월 ‘문화를 심는 디자인’을 표방하는 숍 겸 카페 ‘왓집’이 문을 열었다. 건축가이자 문화콘텐츠 기획자인 김정희(30), 윤선희(33), 문주현(30)씨가 주인이다. 이들은 칠성통이 고향은 아니지만 제주도 밖을 나간 적이 없는 토박이들이다. 문씨는 “칠성통은 얘깃거리가 많은 곳”이라 말한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제작한 제주 말 ‘토마’와 제주 사투리를 넣은 배지, 밥을 숙성시켜 만든 제주토속음료 ‘쉰다리슬러시’와 ‘옴막버거’, ‘건방진 빵’, 취나물에이드 등을 판다. 제주마을 지도도 만든다. 태풍 너구리가 제주를 강타할 때는 ‘너구리음악회’를 열었다. 여행사 겸 아트상품 판매점인 ‘더 아일랜더’도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최근 서울에서 내려와 둥지 튼 ‘이꼬이 앤 스테이’, 비아아트 등과 힘을 합쳐 ‘비아 15 사!먹!자! 마켓’이란 매달 마지막주 벼룩시장을 연다. 이들의 활기와 함께 죽었던 거리가 조금씩 생동감을 찾고 있다.
제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발랄한 상상력을 발휘한 제품들이 많다. ‘제주프랑스영화제: 봄날의 랑데부’를 열었던 고영림씨와 판게스트하우스 대표 신창범씨.
43년 역사를 가진 대동호텔 1층에서 갤러리 비아아트를 운영하는 박은희씨와 갤러리 옆 디자인셀렉트숍 비아오브제를 운영하는 그의 동료 이장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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