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자에게 정화위 설명 기회 제공
불허땐 교육감이 사유 전달해야
“학습권 보호커녕 훼손 앞장” 비난
교육부 “전 장관이 완화약속” 해명
불허땐 교육감이 사유 전달해야
“학습권 보호커녕 훼손 앞장” 비난
교육부 “전 장관이 완화약속” 해명
교육부가 ‘학교 앞 호텔’ 건립을 추진하는 업체에 유리한 훈령을 행정예고했다. 학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교육당국이 학교 주변 유해시설 허용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는 ‘관광호텔업에 관한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 심의규정(안)’을 교육부 훈령으로 제정해 행정예고했다고 10일 밝혔다. 25일까지 기관·단체·개인의 찬·반 의견을 듣기로 했으나, 개정없이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훈령을 보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안에 청소년 유해시설이 없는 100실 이상의 객실을 갖춘 관광호텔을 지으려 할 때, 사업자가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정화위원회) 위원을 대상으로 사업추진 계획을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자는 서면 제출, 위원회 출석 직접 설명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정화위원회가 건립을 불허하면, 교육감 또는 교육장(교육지원청의 장)은 구체적인 금지 사유를 기재해 사업자 및 인허가 담당 기관에 전달해야 한다.
장우삼 교육부 학생건강안전과장은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이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국민한테 약속한 사안이며, 대규모 호텔 투자자한테 사업을 설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민원을 해소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교육부가 국무회의 의결조차 필요 없는 훈령을 만들어 학교 주변 호텔 건립에 길을 터주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같은 목적으로 추진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훈령이 우회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진후 정의당 국회의원실은 “국회의 입법을 무력화하는 전형적인 행정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학교 앞 호텔 문제는 정화위원회 심의를 통해 해결할 게 아니라, 관광호텔을 중심으로 학교 주변에 어떤 유해 환경 요인이 발생하는지를 종합적으로 연구·검토한 뒤 결정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절대정화구역(학교 주변 50m 이내)에 숙박시설 건립을 금지하고 있다. 상대정화구역(50~200m 이내)에서는 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이 운영하는 정화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유해하지 않을 때만 건립을 허용한다. 학교보건법 시행령에서는 인근 학교 교장이 정화위원회에 출석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지만, 교육부가 훈령으로 사업자에게도 사업 설명의 기회를 줬다. 아울러 호텔 건립 불허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해, 이를 빌미로 한 사업자들의 소송 남발 우려도 제기된다.
장우삼 과장은 특히 경복궁 및 풍문여고·덕성여고·덕성여중 옆에 7성급 호텔을 추진하고 있는 대한항공에 특혜를 주려는 훈령이라는 의혹을 부인했다. “대한항공은 사업 변경을 하지 않는 한 재심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 훈령 제정과 대한항공 호텔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진후 의원실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시설물의 위치 등 일부 사업계획을 변경해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박승배 도시연대 사무처장은 “학습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교육부가 학교 주변 호텔 건립이 쉬워지도록 제도적 지원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짚었다.
8일 취임한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학교 앞 유해시설에 반대해 온 대표적 의원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에서도 그런 소신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훈령 제정은 장관 업무 대행 중인 차관이나 주무 부서가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황 장관이 내정자 시절 보고를 받았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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