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원인 서술 대신 유형별 선택
양육자 지정 등에 집중토록 개선
별도기재란 둬 조기개입 등 판단
양육자 지정 등에 집중토록 개선
별도기재란 둬 조기개입 등 판단
‘피고는 항상 허영에 들뜬 나머지 원고와의 결혼생활에 불평을 하다가… 원고를 습관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하여… 파렴치한 범죄를 상습적으로 일으켰고… 이 때문에 원고는 우울증 등의 증상에 시달렸으며….’
한 가정법률 상담 사이트에 올라온 이혼소송 소장의 일부다. 이혼소장들을 보면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려는 송사의 속성, 배신감, 은밀한 가정사의 특성 때문에 이혼소장에는 악감정과 과장이 넘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녀에게 상대방을 비난하는 진술서를 쓰게도 한다. 일부 이혼 전문 법률사무소는 대필작가를 쓴다는 얘기도 있다. 이런 소장과 답변서, 준비서면이 오가면서 비방 정도가 심해지고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 분쟁 해결을 가로막는 요인이 돼왔다.
서울가정법원은 다음달 1일부터 주관적·감정적 어투로 배우자의 잘못을 자세히 쓰지 못하도록 이혼소장 양식을 바꾼다고 24일 밝혔다. 혼인 파탄의 원인을 서술형이 아닌 ‘객관식’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새로 도입되는 소장을 보면 ‘이혼 계기가 된 결정적인 사정’으로 △배우자가 아닌 자와 동거·출산 △배우자 아닌 자와 성관계 △폭행 △욕설·폭언 △알코올중독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 △대화 단절 등 37가지 유형을 제시해 몇 가지를 고르도록 했다. 또 소송 전 자녀 양육 담당자, 수입, 양육비 산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했다. 불필요한 갈등은 줄이고 양육 등 실질적 문제에 더 집중하자는 취지다.
김성우 서울가정법원 공보판사는 “실제 재판에서는 재산분할이 동시에 진행되면 위자료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줄어든다. 간통이나 폭행 등 명백한 사유로 위자료 책임이 인정된다면 혼인 파탄 사유를 자세하게 밝힌다고 해서 위자료 액수가 크게 느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서울가정법원은 소장에 제시된 유형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이혼 사유는 ‘기초조사표’의 ‘판사 및 조정위원에게 전달되기 원하는 사항’ 난에 별도로 쓸 수 있게 했다. 기초조사표는 법원의 조기 개입(접근금지와 신변보호 등)이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한 자료로, 배우자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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