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항소하겠다” 공직선거법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오른쪽 둘째)이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선고를 받은 뒤 취재진을 피해 법정을 나서다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들과 이를 막는 수행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자 비켜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직적 범행 은폐
‘선거개입 댓글 수만 건 올린 혐의’
체포된 직원 빼내고 파일삭제
직원들 “트위터 잘 모른다” 황당 발뺌
‘온라인 활동 내역 문서 작성’
시인했다가 법정서 말바꾸기도
‘무소불위’ 국정원 개혁 필요성 역설
‘선거개입 댓글 수만 건 올린 혐의’
체포된 직원 빼내고 파일삭제
직원들 “트위터 잘 모른다” 황당 발뺌
‘온라인 활동 내역 문서 작성’
시인했다가 법정서 말바꾸기도
‘무소불위’ 국정원 개혁 필요성 역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는 ‘전근대적 보호막’에 기대어 조직적으로 범행 은폐에 나선 국정원의 ‘승리’이기도 하다. 국정원의 수사·재판 비협조, ‘모르쇠 전술’ 앞에서 사건의 진실은 배제됐고, 그 앞에 법원은 무력했다. 국정원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재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행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 등은 범죄 혐의로 직원을 수사하려면 원장에게 “지체 없이” 알려야 하고, 전·현 직원들의 증언이나 진술을 듣는 데도 보름 전 원장의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피의사실’ 등을 미리 알려주도록 한 이 조항들에 기대어 국정원은 이번 여론조작 사건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런 치외법권적 장치에 기대어 재판 내내 국정원 직원들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방해했다. 지난 4월14일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SNS팀) 팀원 류아무개씨는 “당신의 네이버 계정 맞냐. 2011년 연말에 어느 부서에 있었냐”는 검사의 질문에 “이메일을 잘 안 써서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소속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주업무가 온라인 활동인 직원이 자신의 전자우편 계정과 소속 부서조차 모른다고 막무가내식 발뺌을 한 것이다. 같은 달 29일 공판에서 안보5팀장 이아무개씨도 검찰이 제시한 안보5팀 업무 매뉴얼에 대해 “처음 본 문건”이라며 “트위터 자체를 잘 모른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
6월2일에는 같은 팀 김아무개씨가 자신의 네이버 계정 ‘내게 쓴 메일함’에 ‘425지논’이라는 제목의 텍스트 파일을 첨부한 사실을 부인했다. 이 파일은 2012년 4월25일부터 원 전 원장이 부서장 회의 등에서 언급한 지시 사항을 중심으로 선정한 ‘주요 이슈 및 대응논지’에 따른 정치·대북 이슈들을 날짜별로 정리해 놓은 문서다. 같은 전자우편에 첨부된 ‘시큐리티’라는 제목의 파일에 적힌 같은 팀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과 비밀번호 30개도 “모른다”며 버텼다. 뻔한 발뺌이었지만, 재판부는 ‘작성자가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은 디지털 문서 내용의 증거능력을 배척한다’는 원칙을 들어 이 두 문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국정원 ‘조직’은 수사 단계부터 비협조로 일관했다. 지난해 검찰이 정치·선거 개입 트위터 글 5만여건을 올린 혐의로 김씨 등 안보5팀 직원 3명을 체포하자 국정원은 검찰에 강하게 항의했다. ‘사전에 법에 정해진 기관 통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의 항의에, 검찰 수뇌부는 이들을 풀어주도록 수사팀에 지시했다. 결국 검찰은 이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고, 증거도 확보할 수 없었다. 수사 초기에도 국정원 직원들의 불법 트위터 활동 혐의를 포착한 검찰이 국정원에 안보5팀 직원 명단과 트위터 계정 목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이를 무시했다.
법 위에 있는 듯한 국정원의 이런 태도는 전근대적 보호 장치에서 비롯되는 만큼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무소불위처럼 보이는 검찰조차 국정원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의 형사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영역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정원을 과보호하는 독소 조항들을 없앨 때가 됐다는 것이다. 김선식 노현웅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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