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댓글 지시’만 위법 인정
법원, 징역 2년6월에 집유 선고
법조계·학계 “정치현실과 타협”
법원, 징역 2년6월에 집유 선고
법조계·학계 “정치현실과 타협”
법원이 2012년 대선 직전 불거진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여론조작 활동이 불법 정치관여에 해당한다면서도 대선 개입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에 유죄가 선고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 결과의 ‘정당성’까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런 판결이 나오자 법조계와 법학계 일부에선 ‘정치 현실과 타협한 모순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이범균)는 11일, 2009년 2월~2012년 12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70여명이 인터넷에 국내 정치·선거 개입 글을 올리도록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원세훈(63) 전 국정원장에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2년6월과 자격정지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활동은) 국가기관이 특정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국민들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 과정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범행”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인터넷 활동이 국정원의 적법한 직무에 속한다고 오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에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에겐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트위터 계정 175개를 통해 정치관여 트위트·리트위트 11만3621건을 올리고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도 글 2125건, 찬반클릭 1214건을 올려 국내 정치에 개입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이 북한의 활동에 대응한다는 명목 아래 일반인을 가장해서 4대강 사업 등 국책사업을 지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한 것은 국정원의 적법한 업무인 국내 보안정보 작성·배포라고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 심리전단의 인터넷 활동은 원 전 원장이 매달 부서장 회의와 매일 모닝 브리핑에서 지시한 내용에 맞춰 전개됐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선거운동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대선 즈음에도 심리전단 직원들이 야권의 대선 후보자나 후보 예정자를 반대·비방하는 상당수의 글을 올려 원 전 원장이 선거운동을 지시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면서도 “선거운동은 ‘특정 후보의 당선·낙선을 도모하는 능동적·계획적 행위’로서 ‘선거 또는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박상기 연세대 교수(형법)는 “국정원의 정치관여는 결국 대선의 당락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 것일 텐데, 그 부분이 왜 무죄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대선 결과의 공정성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재판부가)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은 법정을 나서면서 “(당시 지시는) 북한의 지속적인 (정부) 비난에 대응한 것이다. 직원들이 구체적으로 댓글을 쓴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