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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4대째 북한산 인수봉 지켜온 백운산장 이영구씨 부부

등록 2005-09-20 18:54수정 2005-09-20 18:54

“막걸리 국수로 산꾼 시름 달래온 한평생” 이영구씨 부부
“막걸리 국수로 산꾼 시름 달래온 한평생” 이영구씨 부부
“막걸리 국수로 산꾼 시름 달래온 한평생”
주말 등산객들이 시장 끼 잔뜩 낀 배를 달래며 올라간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북한산 인수봉(해발 810m)아랫자락의 백운산장에 도착하면 고소한 부침개 냄새가 식욕에 불을 댕긴다.

일제초 조부가 터 잡아 어느새 100년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서울 속 오지
“세상물정 어두우니 불 좀 밝혀줘”

달디 단 막걸리 한잔에 김치전, 그리고 속이 확 풀리게 만드는 얼큰한 가락국수 국물을 들이키면 온 몸의 피로가 싹 가신다.

그리곤 백운산장 옆의 우물에서 한 바가지 물을 퍼 빈 수통을 채우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는 백운산장의 주인장 이영구(74) 할아버지와 김금자(66)할머니.

나이에 비해 건강함이 풀풀 풍기는 할아버지는 지금도 틈나는 대로 산장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를 한다.

이 노부부가 이 산장에 산 것은 신혼 초부터였다. 할아버지는 이 산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놀라운 것은 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대를 이어 이 산장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일제 때 북한산에 들어가 기도를 하던 이해문씨가 처음 이 곳에 자리 잡고 방 한 칸짜리 작은 산장을 지었다. 이 산장은 곧 백운대를 찾은 이들의 명소가 됐다고 한다. 당시 월요일마다 쉬던 화신, 신세계 백화점의 직원들이 즐겨 찾곤 했다.

6.25때는 이 산장에 당시 손 아무개 문교 차관이 피난 왔다. 산장 윗 쪽의 굴방에 숨겨 주었는데 결국 자위대원들의 밀고로 총을 앞세운 공산주의자들이 쳐들어와 그를 연행해 갔다고 한다.

이 일 때문에 옥고를 치른 해문씨는 교통사고로 숨졌고, 아들 남수씨가 산장지기가 됐다.

이후 한국 산악회와 서울 산악회 회원들은 이 산장에서 숙박하며 인수봉을 올랐고, 산사람들의 보금자리로 자리 잡았다.

영구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한 이후 계속 이 산장에서 살았다. 중매로 만난 금자 할머니는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의 신혼살림을 기꺼이 감수했다.

산악구조대가 생기기 전까지 젊은 시절의 영구 할아버지가 살려낸 조난 등산객은 1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산장 옆 우물은 할머니의 현몽에 나타난 흰옷을 입은 할아버지의 점지로 팠다고 한다.

금자 할머니 신혼 당시 우물이 없어 산장 아래 계곡물을 길러 생활해야 했다. 어느 날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현 우물 자리를 파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그 곳은 부엌이고, 이곳은 높은 바위산인데 어떻게 우물이 생긴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했더니 “네 평생 먹고도 남을 물이 나올 곳이다.”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는 것이다.

꿈대로 그 자리에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물이 나오는 우물이 만들어졌다.

백운산장 현판은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 옹이 썼다. 일제부터 이 산장을 즐겨 찾던 손옹은 지난 90년대 중반 직접 현판을 써 제자들에게 전달을 부탁했다고 한다.

‘친절한 금자씨’와 ‘순수한 영구씨’ 부부의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산장에는 20년째 할아버지 부부와 함께 사는 장용열(52)씨도 있다. 정신 지체자인 장씨는 당시 한 수녀가 위탁했고, 노부부는 20년을 한결같이 장씨를 한 가족처럼 보살피고 있다.

산장 손님들의 친구가 되는 7마리의 고양이 역시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비싼’ 흰 페르시안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한 가족이 됐다.

영구 할아버지에 이에 4대째 산장지기가 된 아들 이건(43)씨는 중학교 시절 산장에서 서울 시내에 있는 학교로 통학했다. 어느 날 등산하던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학교 학생이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산에 오르는 이유를 알고는, 학교에 교과서를 준비해줘 그 이후 책가방 없이 통학하기도 했다.

평생 백운산장에서 살아온 영구 할아버지는 유일한 희망은 이 산장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 산장에는 30-40명이 묵을 수 있는 방도 있는데, 아직 전기가 안 들어와 불편한 밤을 보내고 있다. 바로 밑에 있는 산악구조대엔 전기가 들어온다.

얼굴에 한없는 편안함이 넘치는 노부부의 일상에서 저 아래 사바세계의 탐욕스럼과 다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생 산에서 살아 세상물정에 어두워. 전기 좀 들어오게 해줘. 기자 양반.” 영구 할아버지의 간절한 부탁이다.

글 사진/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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