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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거리의 신부들’ 40년…‘박종철 사건’에도, ‘강정’에도 함께 있었다

등록 2014-09-22 21:38수정 2014-09-23 15:04

전종훈 신부(왼쪽)와 문규현 신부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 40돌을 맞아 22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감사 미사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 href="mailto:anaki@hani.co.kr">anaki@hani.co.kr</A>
전종훈 신부(왼쪽)와 문규현 신부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 40돌을 맞아 22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감사 미사를 마친 뒤 걸어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의구현사제단 40주년

군부 독재 맞서고 재벌비리 폭로
정의사회 만들기·약자 연대 힘써
현대사 민주주의 진보 원동력

어제 명동성당서 감사미사
세월호·밀양·쌍용차 가족들 참여
“아플 때 위로해줘 고맙다” 전해
“아주 오랜만에 지붕 덮인 성당에서 미사를 합니다.”

22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 40돌 감사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전종훈 신부의 첫마디에 본당에 모인 신도 등 500여명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말처럼 사제단 40년은 거리에서 보낸 40년이었다. ‘거리의 신부’들은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며 고된 여정을 함께 걸었다. 사제들의 수난은 우리 현대사의 고비마다 민주주의를 한발짝씩 진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사제단은 민주주의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졌을 때 첫발을 뗐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통치가 절정을 이루던 1974년 7월, 중앙정보부가 바티칸에 갔다 돌아오던 천주교 원주대교구장 지학순 주교를 공항에서 붙잡아갔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에 자금을 지원하고 정권 타도를 기획했다는 이유였다. 비상군법회의는 열흘 만에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그해 9월26일 명동에선 신부와 신도 1200여명이 모여 민주주의 회복과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기도회를 연다. 사제단은 이날 창립과 동시에 첫 시국선언을 발표한다.

학살을 통해 권력을 잡은 신군부에도 사제단은 결연히 맞섰다. 1980년 5월에는 ‘광주사태의 진상’을 발표했고, 87년 5월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수사 내용이 조작됐다고 폭로해 6·10항쟁의 불을 댕겼다.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 지난해 9월에는 ‘국정원 해체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전국 시국기도회’를 열며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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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활동은 민주주의와 민생이 위협받는 곳에서 쉼없이 이어졌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용산 철거민 참사 유가족들에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에게,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도 달려갔다. 40돌 감사미사에는 이들 주민과 가족도 함께했다.

전 신부는 40돌 강론에서 “오늘 피와 땀과 죽음으로 이룬 민주주의는 다시 짓밟혔다. 민생은 무너졌고 통일의 길은 가로막혔다. 다시 40년 전 그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 횃불이 돼야 한다는 것이 오늘 기념일에 다시 세우는 소명”이라고 했다. 전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남긴 메시지의 빠른 퇴색을 경계했다. “교회가 이 나라 정치·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해 그 해결에 이바지하라고 당부했다. (그럼에도) 교회 쇄신의 움직임은 없고, 오히려 교황의 흔적을 지우려는 움직임만 있기에 참으로 애달프다”고 했다.

강우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제주교구장)은 “불의의 세계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힘없는 이들의 버팀목이 된 여러 신부님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미사에 참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 정혜숙씨는 “사제단은 우리들이 너무 아플 때 함께 기도해주며 위로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비롯해 한국 사회의 정의가 실현되면 좋겠다. 그래서 사제단이 더 고생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감사미사가 끝난 명동성당 본당에선 사제단의 활동을 평가하고 전망을 공유하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제단은) 성경을 죽은 문자에서 살아 있는 문자,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복음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평가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지역학 협동과정)는 “사제가 덜 발언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지만 검찰·경찰·언론·정부 등 공공영역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제단은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용기를 냈다. 사제단은 앞으로 더 큰 고난과 십자가를 요구받을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고난받는 북한 동포들의 문제 등에 대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들어주시길 부탁한다”고 했다.

박래군(53) ‘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말씀만이 아니라 행동도 보여주시는 분들이다. 그 어려운 현장을 지키고 매도 같이 맞고 고통을 함께한 분들이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그대로 가겠다고 해주시니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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