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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골프장 캐디 산재 신청했다고 ‘퇴사 처리’

등록 2014-09-30 20:22

산재보험 적용 사각지대 (※ 클릭하면 확대가능)
산재보험 50년 됐는데…여전한 사각지대
인권위, 제도개선안 토론회 열어
캐디 등 4대 직종 10% 적용 불과
사업주, 제외신청 조항 악용해 외면
직업성 질환은 심사 너무 까다로워
전문가들 ‘전국민재해보험’ 제안
대기업 소유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캐디)으로 일하는 ㄱ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관련 문의를 했다가 회사에서 쫓겨났다. ㄱ씨는 지난해 3월 골프장 트럭을 밀다가 적재함에서 떨어진 선반에 발가락을 찍혔다. 그런데 제대로 쉬지 못하고 길게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 회사는 치료비 지급을 계속 미뤘다. 한달 뒤 발톱이 떨어져나갔고, 일을 더 할 수 없게 됐다. ㄱ씨는 “산재 적용을 받으면 회사에서 싫어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준다는 치료비가 적정한지만 근로복지공단에 물어보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담 사실을 안 회사는 ㄱ씨의 서명을 위조한 ‘산재 적용 제외 신청서’를 공단에 보내고 ㄱ씨를 퇴사 처리했다.

1964년 시행에 들어간 산업재해보험이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반백년이 지났지만 변화하는 노동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보장 범위가 확대되기는커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 3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시 중구 인권위 배움터에서 개최한 ‘산재보험제도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산재보험이 노동자 건강 보장 제도로 뿌리를 내리려면 외국처럼 ‘전국민재해보험’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캐디,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도 2008년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특례조항 적용 대상이 됐다. 하지만 ‘근로자가 법 적용을 원하지 않으면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악용한 사업주들이 노동자에게 제외 신청서 작성을 강요하거나 허위로 작성하는 일이 빈번하다. 애초 일부 노동자의 자발적 적용 제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항을 사업주가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발제자인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고용직 4개 직종 등록 노동자 43만8307명(2013년 기준) 가운데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이들은 10.4%인 4만5472명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캐디는 2만2787명 중 746명(3.3%)만 적용받고 있다. 이 교수는 “사업주의 적용 제외 신청을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하청업체를 통해 외국에 파견되는 건설노동자도 산재보험의 대표적 사각지대다. 대기업의 사우디아라비아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비계공으로 일하던 ㄴ씨는 지난해 말 작업 중 다리를 크게 다쳐 2년 이상 치료와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ㄴ씨가 속한 하청업체가 산재보험이 아니라 보장성이 떨어지는 민간보험인 해외근로재해보험에 가입한 탓에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국장은 “비정규직 건설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해 귀국해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해외 파견 노동자가 있는 사업주들은 산재보험에 ‘당연 가입’하도록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사고성 재해와 달리 직업성 질환은 근로복지공단이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지방의 한 공공병원에선 2009년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5명이 자연유산을 했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기를 출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적용은 아기가 아닌 노동자가 당사자”라는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 불승인 결정을 했다. 공공운수노조 이태영 국장은 “야간근무를 하는 간호사의 작업환경이 임신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도 공단은 이런 연관성을 노동자에게 입증하라고 한다”고 했다.

임준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산재보험은 사업주 배상책임 보험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어 노동자의 건강권을 적극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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