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인노회’ 활동 50대 패소
1980년대 노동운동을 하다가 투옥됐더라도 체제 변혁을 꾀하는 단체에서 활동했다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이래 민주화운동 인정 범위를 협소하게 보는 가운데, 대법원도 비슷한 기조의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신아무개(56)씨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민주화보상심의위)를 상대로 낸 민주화운동 불인정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신씨는 1985년 대우전자 인천공장에 취직해 노동권을 침해하는 회사에 항의하다 10개월 만에 해고됐다. 그 뒤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한 신씨는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가입과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죄로 1990년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 형이 확정됐다. 이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차장 등으로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두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신씨는 2001년 민주화보상심의위에 명예회복을 신청했지만, 회사에 항의하다 해직된 사실에 대해서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인노회와 범민련 활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또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간 질환이 생겼다며 보상금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신씨는 인노회 활동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라며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재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원심은 노동권 확대 활동에 무게를 뒀다. 1·2심은 “신씨가 인노회와 범민련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행위를 반복했지만 권위주의 정권 아래 노동자 권익과 인권 보장을 위한 행위로서 민주화운동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인노회 회장을 지낸 안아무개씨 등 신씨와 함께 활동하다 유죄를 선고받은 2명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것도 참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은 인노회가 법원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된 점을 앞세웠다. 대법원은 “이념이나 주된 목적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국가체제를 파괴·변혁하는 데 있고, 신씨도 이를 위해 활동한 것이 분명한 이상, 그 활동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회복·신장과 관련된 외관을 갖추고 있어도 전체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인노회 사건은 1989년 노태우 정권 들어 이적단체 구성죄를 적용한 첫 사건이다. 검찰은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이념으로 하는 인노회를 결성해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전두환·이순자 구속 촉구대회’를 개최한 혐의로 신씨 등 6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형사지법 백영엽 판사는 “이 단체는 노동운동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재청구된 6명의 구속영장 중 5명 것을 조희대 판사(현 대법관)가 발부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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