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네이버·카카오 등 불러
특정단어 모니터링 방침 제시
검찰 “16일 국감서 입장 밝힐 것”
특정단어 모니터링 방침 제시
검찰 “16일 국감서 입장 밝힐 것”
‘사이버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검찰이 ‘국론분열 및 정부·공직자 비방’을 주요 단속 대상으로 삼고 특정 단어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기로 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회의 자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에 분개하며 내놓은 국무회의 발언을 강조해, 이번 단속이 박 대통령을 의식한 조처임을 드러냈다.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대검의 ‘사이버상 허위사실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 자료에는 중점 수사 대상과 방식이 제시돼 있다. 검찰은 중점 수사 대상으로 △의혹 제기를 가장한 근거 없는 폭로성 발언 △국가적 대형 사건 발생 시 사실을 왜곡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각종 음모설, 허위 루머 유포 △공직자의 인격과 사생활에 대한 악의적이고 부당한 중상·비방을 제시했다. 이 자료는 지난달 16일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뒤, 18일 대검이 안전행정부와 미래창조과학부 등 정부 부처와 함께 네이버·다음·카카오 등 인터넷업계 관계자들을 불러 진행한 대책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이다.
검찰은 단속 방법으로 포털과 핫라인 구축, 인터넷 실시간 모니터링을 들었다. “주요 명예훼손·모욕 사건 전담수사팀과 포털 간에 핫라인을 구축”한 뒤 “인터넷 범죄수사센터에서 운용 중인 ‘인터넷 모니터링 시스템’을 활용, 유언비어·명예훼손의 주요 타깃으로 지목된 논제와 관련된 특정 단어를 입력·검색하여 실시간 적발”하겠다는 것이다.
회의 자료에는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이 쌓이게 돼서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는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강조돼 실려 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청와대 비선라인인 만만회가 인사와 국정을 움직이고 있다”는 발언으로 불구속 기소된 것이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처벌 사례의 하나로 제시됐다.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 기사 때문에 기소된 것도 이런 회의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회의에서 직접 포털에 글 삭제를 요청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수사기관인 검찰이 민간업체를 단속에 동원하는 것을 뛰어넘어 방송통신위원회의 역할까지 자임한 셈이다. 그런데 일부 정부·업계 관계자들은 검찰의 실시간 검색 방침이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기호 의원은 “정보통신망법은 글을 삭제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심의를 거쳐 포털에 명령하게 하고 있는데, 검찰의 즉시 삭제 요청은 이를 무시한 초법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명예훼손은 정권 비호 목적의 남용 가능성 때문에 형사처벌하지 않는 게 국제적 추세인데 우리나라만 거꾸로 가고 있다. 검찰 방침은 긴급조치 1호의 유언비어 유포죄를 되살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직접 삭제하는 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가 피해구제 절차를 적극 홍보하는 방법으로 삭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라며 “16일 열리는 서울고검 국정감사에서 이번 논란에 대한 검찰의 입장을 정리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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