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과 한국을 오가는 조선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황해>
‘청부살해’를 하려고 입국한 중국 동포 남성이 건물 계단참에 몸을 숨긴다. 피해자가 나타나자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다.
이런 내용의 영화 <황해>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ㄱ건설 대표 경아무개(59)씨를 청부살해한 혐의로 ㅅ건설 대표 이아무개(54)씨, 청부살인을 실행한 중국 동포 김아무개(50)씨, 둘을 연결해준 이아무개(58)씨를 살인교사·살인·살인예비 혐의로 구속했다고 15일 밝혔다.
김씨가 살인 청부를 받은 것은 지난해 10월 초다. 무술 유단자인 김씨는 중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킥복싱·무에타이 단체 간부 이씨한테서 ㄱ건설의 소송 담당 직원 홍아무개(40)씨를 살해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4000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체육을 전공하고 고교 교사를 했던 김씨는 2011년 먼저 한국에 정착한 부인, 대학생 아들과 함께 살려고 입국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4000만원’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원래 청부살인을 의뢰한 이는 따로 있었다. 평소 숨진 경씨와 의형제처럼 지내던 ㅅ건설 대표 이씨였다. 이씨는 2006년 아파트 신축 공사와 관련해 70억원짜리 토지매입 용역계약을 ㄱ건설과 맺었다. 하지만 계약이 틀어지면서 소송전이 벌어졌다. 법원에 걸어놓은 공탁금 5억원이 ㄱ건설 대표 경씨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에서 고소까지 당한 이씨는 소송 업무를 맡았던 ㄱ건설의 홍아무개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9월, 30년 지기인 무술단체 간부 이씨를 찾아가 “작업해 보내버릴 사람을 알아봐달라”고 한 뒤 홍씨의 사진과 차량번호, 회사·집 주소를 건넸다.
김씨는 무술단체 간부 이씨한테서 홍씨의 인적사항을 건네받았지만, 그새 홍씨는 ㄱ건설을 퇴사한 상태였다. 이에 ㅅ건설 이씨는 대상을 회사 대표인 경씨로 바꿨다고 한다. 김씨는 3월20일 저녁 7시18분께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빌딩 1층 계단에서 퇴근하려고 사무실 문을 나서는 경씨를 살해했다.
3월3일 일어난 ‘강서 재력가 살인 사건’ 피의자를 끈질긴 탐문과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 조사를 통해 붙잡은 강서경찰서는 이번에도 피의자의 예상 이동로에 설치된 120여대의 카메라 영상을 모두 조사했다. 이동·도주로 주변 1457가구 주민 5853명과 전출자 2053명에 대해 탐문조사도 했다. 경찰은 안짱걸음을 하는 용의자의 영상 분석 등 과학수사를 통해 김씨를 피의자로 지목하고 지난 6일 사건 발생 7개월여 만에 체포했다.
살해범이 살인교사를 받고 주저하다 범행을 실행에 옮긴 것도 ‘강서 재력가 살인 사건’과 비슷하다. 김씨는 3월3일부터는 범행 장소 근처에 매일 나타났는데, ‘돈을 돌려줄 수 있었다면 살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무술단체 간부 이씨를 통해 받은 3100만원을 써버린 뒤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살인교사 혐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것도 두 사건이 비슷하다. ㅅ건설 이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무술단체 대표 이씨는 “혼만 내주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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