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회를 시작하며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입니다. 독자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뉴스를 읽지만, 뉴스의 흐름을 꼼꼼하게 따라가기는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다양한 이슈를 깊게 들여다보고 싶어도, 관련 뉴스를 모두 챙겨보려면 꽤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 합니다. 독자들은 기자들에게 숨겨진 정보를 캐내는 ‘뉴스 파인딩’만큼이나 쏟아지는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뉴스 큐레이팅’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은 그래서 ‘더(The) 친절한 기자들’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은 화제가 된 이슈를 기존 뉴스보다 더 깊고, 더 자세하고, 더 풍부한 팩트를 들고 더 친절한 문체로 다가가려 합니다. 영어 정관사 ‘The’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 앞에 붙습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은 한겨레 사이트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콘텐츠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은 이 기사 한 꼭지만 읽으면 관련 이슈에 대해 기본적인 팩트는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기사를 모토로 합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때로는 채찍도 부탁드리고요. 제보도 부탁드립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이화여대 같은 경우에는 졸업해서 장관급 이상 부인 되시는 분, 영부인이 된 분들이 좀 많아요? 그 사람들 공부할 때는 그렇게 어렵게 자취나 하숙해가면서 공부했더니 이제는 학교 재정이 커지니까 돈 있다고 그냥 아무 데나 막 때려 지으면 안 되잖아요.”
16일 오전 SNS를 뜨겁게 달군 한마디 말입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대학가인 신촌에서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이 기숙사를 추가로 건립하는 문제로 논란이 한창인데요. 기숙사 추가 건립에 반대하는 이재복 연대·이대 기숙사건립대책위원장이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말입니다. (
▶인터뷰 전문 보시려면)
대학가 원룸,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
이 위원장은 지난주 신촌 일대에서 원룸 등 임대업을 하는 수십 명의 주민들과 함께 기숙사 신축 계획 철회 요구 집회를 열기도 했는데요. 이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우선 대학 쪽이 기숙사를 일반 택지나 대지에 짓는 것이 아니라 안산(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일대에 있는 산입니다)에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동네의 자연 생태가 파손된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몇년 전부터 주변 상권이 죽어가고 있는데 기숙사까지 지어서 학생들이 기숙사로 들어가면 주변 상권이 더 침체된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신촌 인근 원룸은 보통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50만원 정도가 시세라는 말도 했습니다.
일단 도입부에서 전해드린 이 위원장의 말은 참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황당하다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또 아니겠지요. 그래서 대학 기숙사 문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팩트를 하나씩 체크해보려 합니다.
우선 기본 현황을 보지요. 대학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신뢰할 만한 분석 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행한 ‘대교연 통계’를 보면, 2013년 기준 국·공립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20.3%, 사립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17.4%입니다. 그런데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의 기숙사 수용률이 전국 평균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수도권 대학의 기숙사 수용률은 13.5%로 1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참고로, 이 위원장이 민감하게 생각하실 연세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21.6%, 이화여대는 8.4%입니다. 통계로만 보면, 연세대는 상대적으로 기숙사 수용률이 높은 편이고 이화여대는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사실 연세대의 21.6%도 학생 5명 중 1명 정도 수준이니까 그리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전국 기숙사 수용률 20%…수도권은 13.5%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발행한 대학 기숙사 관련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전국 대학 소재지 기준 타지역 출신 학생은 모두 88만5506명으로 이 가운데 대학 기숙사에 살고 있는 학생은 35만7566명에 불과합니다. 88만여명 가운데 56.9%에 이르는 50만4227명의 학생이 기숙사 입실을 원하는 학생들이지만, 이들의 바람은 충족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기숙사 수요 대비 수용률이 33.8%에 그칩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 많은 대학 기숙사가 필요하고, 특히 서울 소재 대학들이 기숙사를 더 많이 짓는 것이 ‘연간 등록금 1000만원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필요한 조처 중 하나라는 사실은 크게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 문제가 이렇게 단순하게 규정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대학 기숙사 문제는 단순히 추가로 건립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만 살펴볼 수 없습니다. 바로 기숙사 비용 문제 때문이지요.
대학정보사이트인 ‘대학 알리미’를 보면, 2013년 기준 연세대의 1인실 기숙사비는 월 55만 2000원입니다. 2인실은 21만 8000원, 3인실은 20만 5000원이네요. 연세대는 현재 2644실인 기숙사에 추가로 168실을 더 지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모두 978실의 기숙사를 갖춘 이화여대는 1인실 기숙사비가 월 41만원이고, 2인실은 월 25만 6000원입니다. 이화여대는 2016년 2월까지 2344명이 추가로 들어 갈 수 있는 기숙사를 건립해 기숙사 수용률을 현재 8.4%에서 20% 수준으로 올릴 계획입니다.
‘민자’ 기숙사는 등골 브레이커
전국 국·공립대 기숙사 월 평균 비용은 1인실 19만2000원, 2인실 13만8000원, 3인실 12만1000원, 4인실 11만원입니다. 사립대는 1인실 31만5000원, 2인실 19만7000원, 3인실 14만7000원, 4인실 14만2000원 수준입니다. 땅값 차이를 감안해도, 연세대의 1인실 기숙사비는 전국 대학 최고 수준이고, 이화여대도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요. 특히 연세대는 전국 4년제 대학 186곳 가운데 가천대(72만8000원), 중앙대(57만1000원)에 이어 세번째로 1인실 기숙사비가 비싼 대학입니다. 이화여대는 24번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인실의 경우, 연세대는 48번째, 이화여대는 35번째로 비싼 대학이네요. 대학교육연구소는 ‘대교연 통계’에서 “최근 대학들의 기숙사비가 비싼 것은 기숙사 건립 및 운영에 민자운영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민자 기숙사는 적립금 등 대학 내부 자본이 아니라 외부 투자로 지은 기숙사로, 민간 기업이 학교에 자금을 투자해 건설하고 운영하는 기숙사입니다. 소유권은 학교에 있지만, 운영권은 일정 기간 사업 시행자가 갖고 사용료를 받기 때문에 수익을 얻기 위해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을 받습니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실이 공개한 ‘사립대학교 민자 기숙사 포함 대학’ 보고서를 보면, 연세대 민자 기숙사(SK국제학사)의 한 학기 비용은 1인실(191개)이 249만원, 2인실(207개)이 165만원입니다. 고려대 민자 기숙사(프런티어관)의 한 학기 비용도 1인실(7개) 234만원, 2인실(468개) 152만원이며, 건국대는 1인실(148개)이 213만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화여대는 새로 짓는 기숙사를 외부 투자가 아니라 대학 적립금을 이용해 짓는다고 밝혔습니다. 이화여대 관계자는 ”학생 주거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교육 목적의 기숙사 신축 사업에 대해 ‘상업화’라는 주장을 펼치는 주민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팩트들을 종합해보면, 대학이 기숙사를 추가로 만들어 기숙사 수용률을 높여야 하겠지만 민자 투자 등으로 외부 자본을 끌어와서 비싼 기숙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쌓아둔 적립금을 풀어서 공공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숙사를 짓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적립금 쌓아두고…공공 기숙사는 꿈?
그런데 이 위원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비단 신촌에만 거주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한겨레>의 지난해 6월 10일치 기사
‘“공공 기숙사? 우리 집값 떨어져요”…님비에 발 묶인 주거 복지’를 보시면, 서울 광진구 구의동 일부 주민들도 서울시가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20층 700실 규모의 대학생 공공기숙사를 지으려 하자 반발하고 나선 일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기숙사가 들어서면 한강변 아파트가 아니라 동굴 아파트가 된다. 조망권 침해로 가구당 몇 억원씩 피해를 입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일부 진보 인사들이 ‘20대 개새끼론’을 펼친 적이 있지요. 20대들의 투표율이 낮다고, 이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보수 정당 지지층이 많은 중장년층에게 번번이 선거에서 진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 사회는 20대 청춘들에게 뭘 해줬을까요?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는 정말 20대들에게 손가락질할 자격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