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17일치 신문에서 ‘간호사관학교 ‘금남의 벽’ 깬 지 1년 만에 2명 퇴학, 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생도 입학자격을 여성으로 제한했던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2012년부터 남성 생도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이 학교에 다니던 2학년 여자 생도가 2013년 임신을 해서 교제 중이던 동기생 남자 생도와 함께 퇴학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한 단독 보도였습니다.
보도는 인터넷에 공개된 16일 밤부터 인터넷을 들끓게 만들었습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실린 기사에는 1127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의견은 ‘리바**’이라는 누리꾼의 “20살 넘은 성인에게 임신했다고 퇴학시키는 것도 참 엽기스럽군”이라는 말이었습니다. 585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700명이 ‘싫어요’를 눌렀습니다. ‘『惡』Zero**’라는 누리꾼의 “왜 퇴학인 거야? 품위를 깨서? 별들은 술 먹고 행패에 부하 성추행하고? 똥싸고 있네”라는 댓글에도 1069개의 ‘좋아요’가 추천됐습니다. “퇴학이라니, 국가가 성관계도 통제하나?”, “남녀의 사랑은 자연의 섭리인데, 규제가 답은 아닌 듯…”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누리꾼 여론은 대체로 간호사관학교가 두 생도를 퇴학시킨 것에 부정적이었습니다.
물론 두 생도의 퇴학 조처가 마땅하다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부득이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면, 피임 조치는 하고 관계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타임**)라는 의견, “퇴학 찬성! 군사교육의 양성소인 간호사관학교의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고…”(ks**) 등의 논리가 그 근거였습니다.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은 이 문제의 배경과 관련한 팩트들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우선 간호사관학교는 육군, 해군, 공군에서 근무할 간호장교 양성을 위해 세워진 특수목적대학입니다. 2012년 처음으로 남자 생도 8명의 입학을 허용했습니다. 퇴학을 당한 두 생도는 1학년 때 만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간호사관학교는 1학년 생도의 이성교제 제한 규정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관계를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학년이 되면서 학교에 교제 사실을 알렸습니다. 간호사관학교는 학교 쪽에 신고하는 것을 전제로 2학년부터는 이성교제를 허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생도는 특박 기간에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했습니다. 남자 생도의 입학을 허용한 지 1년 만에 남녀 생도의 동반 퇴학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며 학교 쪽은 당황하고 있습니다. 국방부와 함께 이 내용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우선 간호사관학교의 학칙을 살펴봤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실이 공개한 ‘명예최저기준위반 생도 퇴학과 관련’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면 ‘생도생활예규’가 적혀있습니다. 생도생활예규 제3장 태도 및 품행 제23조(이성교제)를 보면, 생도의 품위 및 명예에 입각한 건전한 이성교제는 허용한다고 쓰여 있지만, ‘임신’은 엄격한 금지사항입니다. 이 밖에도 ①결혼 및 약혼, ②교수 및 교관, 환자, 부사관, 군무원, 병사와의 이성교제 ④동침, 성관계, ⑤성범죄, 성희롱, 성군기 위반사고, ⑥강압 혹은 강요에 의한 교제 등이 금지됩니다.
그렇다면 육군사관학교(육사)의 상황은 어떨까요. 육사는 1998년부터 여성 생도의 입학을 허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지난해 육사에 입학한 여생도 비율은 선발 정원의 10%로 300여 명이나 됩니다. 육사는 여성 생도 입학 직후부터 ‘3금 제도(금주, 금연, 결혼)’와 함께 생도들의 이성교제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이후 2005년 한 차례 개선을 통해 생도 간 이성교제는 허용했는데요. 단, 같은 중대 내에서의 이성교제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만약 적발되면 한 생도는 다른 중대로 전출시킨다고 합니다. 여전히 1~2학년 생도에게는 이성교제는 금지사항이기도 합니다.
육사는 2012년 다시 25살이던 한 4학년 생도가 주말 외박을 나와 원룸에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한 적이 있는데요. 대법원은 지난 5월 이 퇴학 처분이 부당하다며 “취소하라”고 판결한 적이 있습니다.
이 판결 직후 국방부는 정례브리핑에서 “대법원 판례에 맞춰 모든 기관이 운영규칙이나 법 등을 수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사관학교의 규칙과 법을 수정할 수 있다고 시사했는데요. <한겨레> 디지털콘텐츠팀이 확인한 결과, 이 시대착오적 규정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육사에서 간호사관학교와 같은 생도 임신 상황이 발생한다면, 육사 생도들은 어떤 처분을 받게 될까요? 육군사관학교에도 간호사관학교와 같은 생도생활예규가 있는데요. 여기서 역시 임신을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육사 정훈공보실 소속 이건호 소령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임신과 혼인은 퇴학 사유가 되지만, 교육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즉답을 피했습니다.
인권법 전문가인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규칙을 제시하면서 군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합니다. 또 “임신과 출산을 위해 학교를 잠시 쉬면 될 문제를 퇴학으로 처리하는 것은 개인에게 가혹한 처사”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재단 인권의 최현모 사무처장도 “최근 군대 내 여성 군인들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임신이 결격 사유가 되는 것도 아닌데 개인의 자기 결정권(임신과 출산)을 비상식적으로 제어하고 침해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사관학교라는 특수성은 있겠지만, 여성 생도가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기본적 권리의 하나인 ‘교육받을 수 있는 권리’까지 빼앗는 게 맞을까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임산과 출산에 따른 차별금지를 권고하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군은 군사정보기관으로써 자신들만의 특별한 규칙과 규율이 필요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최근 벌어진 군 내 폭행 사건과 비리 소식 등을 접하다 보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조차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개인을 억압하는 이런 소식이 계속 들리는 상황에서 군은 과연 신뢰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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