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잇단 대형 인재에 불안·답답
“수학여행도, 강당행사도
사고 걱정부터 앞선다”
고교 교사 하소연
“수학여행도, 강당행사도
사고 걱정부터 앞선다”
고교 교사 하소연
세월호 참사로부터 반년 만에 경기도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공연장 환풍구 추락 사고로 16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안전 불감증을 질타하고 ‘안전 국가’를 만들자던 외침이 요란했는데, 금요일 저녁 흥겹게 걸그룹 공연을 관람하던 시민들이 상상도 못했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시민들은 ‘도대체 참사의 끝은 어디냐’, ‘대한민국은 참사 공화국이냐’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터라 시민들은 더 놀랄 수밖에 없다. 수학여행을 떠난 고교생들을 포함해 304명이 근해에서 침몰하는 배와 함께 사라지는 끔찍한 장면을 하릴없이 지켜봐야 했다.
지난 5월26일에는 경기도 고양종합터미널에서 용접작업 중 불꽃이 튀어 화재가 발생해 8명이 숨지고 61명이 다쳤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한달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검찰은 지난달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발주에서 시공까지 법규를 어기고 안전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자격자가 면허를 빌려 종합터미널 소방시설을 시공했다. 화재 당시 지하 1층 스프링클러는 차단된 상태였고 대피방송도 늦게 이뤄졌다. 용접작업은 용접기능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맡았다.
2월에 발생한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도 ‘인재’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사고였다. 부실한 건물 지붕은 폭설에 쉽게 무너져내렸다. 강당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던 대학생 등 10명이 사망하고 204명이 다쳤다. 지난 9월 법원은 “건축물 설계, 시공, 유지, 관리 각 단계에서 각자 주의의 의무를 다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임이 밝혀졌다”며 사고 책임자 13명 모두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지난달 30일에는 건조한 지 27년이나 된 ‘바캉스호’가 1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항하다 전남 신안군 홍도 앞바다에서 좌초하는 아찔한 사고도 벌어졌다.
군대에서 안전대책도 없이 위험한 훈련을 하다가 생명을 잃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달 2일 밤 11시께 충북 증평군 제13공수특전여단 예하부대에서 포로 체험 훈련을 하던 부사관 2명이 호흡 곤란으로 질식사했다. 두건으로 사용한 신발주머니가 공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폴리에스테르 재질이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신발주머니는 문방구에서 산 것이었다. 특전사령부의 군 수뇌부들이 지난 4월 영국 <비비시>(BBC) 프로그램을 보고 이런 훈련을 기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7월에는 충남 태안 안면도로 해병대 캠프를 떠난 고등학생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당시 캠프에 참가한 공주사대부고 학생 197명 중 80명은 교관이 “여기까지는 안전하다”고 해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고무보트에서 뛰어내렸다. 결국 5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인재’로 볼 수밖에 없는 사고가 끊임없이 벌어지자 시민들은 불안하고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성남시에 사는 직장인 황민수(32)씨는 “한달에 한번꼴로 ‘참사’라는 제목이 붙은 뉴스를 본다. 오늘도 깜짝 놀라 판교 근처에 사는 몇몇에게 전화를 해봤다. 참사 공화국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고등학교 교사 김아무개(34)씨는 “판교 사고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요즘엔 어떤 행사를 하기가 무섭다. 수학여행을 간다고 해도, 강당에서 행사를 한다고 해도 사고 걱정부터 앞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외면하는 한국인에게 후진국형 참사는 계속 터질 수밖에 없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17일 오후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야외광장에서 열린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축제’ 공연 도중 환풍구가 붕괴되면서 관객들이 10여m 아래로 추락해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구조작업을 펴고 있다. 경기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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