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 못하는 사람 유니온
‘개그 못하는 사람 유니온’ ‘인기없는 사람 유니온’ 등
웃기고 슬픈 사연 가진 또 다른 유니언들 속속 등장
소외된 사람들의 작은 저항, 새로운 소통을 꿈꾸다
웃기고 슬픈 사연 가진 또 다른 유니언들 속속 등장
소외된 사람들의 작은 저항, 새로운 소통을 꿈꾸다
“일 못하는 구멍들 여기다 모여라!”
<한겨레>가 19일 보도한 기사 (‘‘회사에서 또 사고쳤어요 ㅠㅠ’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화제’ (▶ 관련 기사 보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0399.html)로 ‘일못유’의 조합원은 2300명을 훌쩍 넘겼다. 과도한 관심을 환영했던 ‘일못유’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공개 범위 설정을 공개에서 비공개로 변경했다. 그런데 그 사이 웃기고 슬픈 사연을 가진 또 다른 유니온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일도 잘하고, 개그도 잘 치는 센스를 겸비하면 인기를 얻는 시대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작은 저항이 시작됐다. 이들은 각각 ‘개그 못하는 사람 유니온’, ‘인기없는 사람 유니온’을 만들어 새로운 소통을 꿈꾸고 있다.
‘개그 못하는 사람 유니온’ (이하 개못유,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groups/536998246428400/?fref=ts)에는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들, 개그를 쳐도 남들이 심각한 얼굴로 쳐다보는 이들이 모여 있다. ‘개못유’의 운영자 조종현(29)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자유롭게 드립 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못유’의 조합원이기도 한 조씨는 일도 못하지만 개그도 잘 못하는 자신을 한탄했다. 재미가 없으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시대에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개못유’를 열었다. 이곳에는 팍팍한 일상에 치여 개그감을 상실한 조합원들의 자백이 녹아있다.
“아, 난 고급유머를 할 뿐인데…” (Kwang***), “개그 빼면 시체인 내가 노잼 그룹이라니… 아, 그래서 내가 요즘 시체처럼 사는 건가” (이명*), “왜 제가 드립을 치면 그 밑으로 댓글이 안 달릴까요? 의문입니다. 왜 제가 드립을 치면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만 웃어주는 걸까요? 의문입니다” (장대*), “우리 ‘개못유’에서 건배 제의는 ‘개그는’ ‘언제쯤?’ 어떻습니까?” (조수*) 등의 조합원 글이 호응을 얻고 있다. 조씨는 새로운 조합원을 기다린다. “자신감을 갖고, ‘개못유’에서 마음껏 개그치세요. 언젠가는 웃길 날이 있겠죠. 하하하.”
자신은 남들에게 인기가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 사람들은 ‘인기없는 사람 유니온’ (이하 인없유,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groups/1456524957932395/?fref=ts)에 둥지를 텄다. ‘인없유’ 운영자 한진호(29)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뜸 오랜 고민을 털어놨다.
“SNS나 블로그를 하다 보니 스스로 상품이 되는 것 같았어요. 가끔, 이게 정말 내 모습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보여야 제가 주목을 받잖아요. 그렇다 보니, ‘인기’라는 것에 강박이 생겼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인기상품이 되지 않기를 선언한 한씨는 자신의 손으로 ‘인없유’ 페이지를 개설했다. 이곳은 인기없는 사람들의 소심한 저항도 위로를 필요로 하는 공간도 아니다. 하지만, ‘인없유’ 조합원들이 남긴 흔적은 웃음 짓게 만든다.
‘인없유’는 페이스북 비공개 클럽이다. 팍팍한 삶이지만,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면 ‘인없유’를 찾아가보면 좋겠다. 사용자들이 왜 자신은 ‘인기 없는’ 사람인지에 대한 한탄 등과 같은 각종 사연을 보며 위안삼거나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다. 운영자 한씨도 “인기 좀 없으면 어때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고백할 수 있는 조합원”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과 개그 못하는 사람 유니온에서 인기없는 사람 유니온까지, 뭘 자꾸 못 하거나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따로 유니온을 만들어 뭉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압박하는지 보여주는 현상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얼마만큼 상품화를 요구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오 연구원은 “일 잘하고 유머감각을 겸비하면 인기가 얻는 것은 모두 자기계발의 영역”이라며 “소속된 집단 안에서 피로함을 표현하는 게 어려운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아주 제한된 해방공간을 찾는 것인데, 이는 반자본주의적 행위라기 보다는 ‘세상이 참 힘들게 하네요’ 정도의 메시지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고민을 터놓을 정서적인 공감 공동체가 사라졌고, 모이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욕구가 온라인 공간에서 표출돼 정서적 공감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최근엔 공동의 미래나 환경, 통일 문제 등 거창한 것보다 개인에게 당면한 현실의 일부분, 단편 등에서 큰 결심 없이 쉽게 모일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인다”고 말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는 ‘매력 자본’ 개념에 대한 이야기로 이 현상을 분석했다. 그는 "매력 자본이란 외모가 주는 매력을 주는 것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매력이 자본으로 환원되는 그런 개념인데, 이렇게 유통되는 매력 자본도 결국 능력주의의 변종"이라며 "이런 개념이 유통되고 일반화하면서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으면 남을 웃기기라도 해야 이런 매력 자본이 생기는데, 쑥스러워 하고 수줍은 사람들은 점점 더 배제되거나 소외되는 현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피로감이 분명히 있고, 그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 외모, 개그 등의 압력들에 대해서 새로운 영토를 찾아가는 탈주의 형태로 볼 수 있다"며 “이런 모임에서 쏟아지는 익살과 해학 속에서 새로운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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