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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내 응급상황에 나서지 않는 의사 처벌 받는다?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4-10-23 11:05수정 2022-08-22 09:46

[더(The) 친절한 기자들]

정의화(66) 국회의장이 지난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두 살 여자 아이를 응급처치 한 뒤 아이 어머니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아이가 좌석 손잡이에 눈을 부딪쳐 심하게 울고 있었는데, 정 의장이 간단하게 응급처치를 해 상황을 정리했다고 하네요. 정 의장은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입니다. ( ▶관련 기사 클릭)

비행기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해 승무원이 의사를 찾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미연방항공청이 1996년 10월부터 1997년 9월까지 미국 5개 항공사의 국내선 자료를 분석해보니, 1년간 1132명, 하루 평균 3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승객 100만 명당 8명 비율로 환자가 발생한 꼴이라고 합니다.

1. 비행기 내 응급 상황, 의사들의 생각은?

의사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름다운 봉사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뿌듯해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미국 항공우주의학협회가 1998년 회원 2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비행기 내 응급 상황 유경험자인 응답자 850명 중 533명(62%)만이 진료에 응했다고 합니다. 47명(5.5%)은 진료를 하지 않았고요. 진료를 하지 않은 이들은 환자가 자신의 전문 진료 분야가 아니거나, 의료 사고에 대한 부담감 등을 이유로 꼽았습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몇 번 기내에서 응급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 좋은 마음을 갖고 진료하지만 혹시나 잘못될 경우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평소에 잘 다루지 않던 질환일 경우 부담감은 더 커진다”고 말했습니다.

2. 응급처치 후 문제 발생 때 책임은?

의사의 심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착한 사마리안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습니다. 미국은 1998년 항공의료보조법(Aviation Medical Assistance Act)을 제정해 의사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을 땐 형사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2008년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선의의 응급 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응급환자에게 응급 처치를 했다가 재산상 손해를 입히거나, 죽거나 다치게 할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 한해 행위자에게 민·형사책임을 면제해준다는 조항입니다. 단,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은 면책은 안 되고 감면만 됩니다.

비록 법적으로 면책 조항을 두고 있지만 환자나 환자 가족이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습니다. 이럴 경우 의사는 재판정에서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는 자신의 면책 사항을 입증해야 합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치고는 대가가 혹독한 셈이죠. 다만, 법원이 의사의 ‘중대한 과실’을 쉽게 인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위안이 됩니다. 서울에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응급상황이었고, 무상으로 자발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과실을 인정하기가 까다로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3. 응급 상황에 나서지 않은 의사는 처벌 받는다고?

의사들 사이에선 ‘기내 응급 상황에 나서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도 퍼져 있습니다.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6조는 “업무중에 응급 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 의료를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기면 면허가 취소되거나 6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도 처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업무중’인 의사들에게 적용된다고 보는 게 다수 의견입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응급 의료 의무는 업무중인 의사에게 부과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 처벌하기 위한 조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처벌받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천지의 김성훈 변호사는 “응급 의료를 받을 권리가 ‘병원’이라는 장소로 한정된다고 볼 수 없다”며 “의료법을 보면 의사는 응급환자에게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선의 처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응급의료법은 업무중이 아니더라도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응급 의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료법과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업무중이 아니더라도 의사는 응급환자를 진료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최종 판단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4. 승객·의사·항공사 ‘윈-윈-윈’ 해결책 낸 ‘루프트한자’

승객의 안전은 항공사의 책임인데, 승객으로 비행기를 탔다가 자발적으로 돕겠다고 나선 의사가 이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는 건 불합리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비행기마다 항공사가 고용한 의사를 탑승시키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 겁니다. 묘안이 없을까요?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가 좋은 예일 것 같습니다.

이 항공사는 ‘기내 의료진’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의사인 승객이 탑승 전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전공진료과목을 등록하면 여러 혜택을 제공합니다. 첫 탑승 때 5000 마일리지를 추가로 주고 비행기 티켓 할인 쿠폰도 부여합니다. 승무원은 어떤 의사가 어떤 자리에 앉아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동시에 항공사는 기내에서 이뤄진 의료 행위로 의사가 져야 할 책임에 대한 부담을 막아줍니다. 승객이 의사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경우 항공사가 가입한 책임보험으로 의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승객·의사·항공사 모두를 위한 ‘윈-윈-윈’ 해결책 아닐까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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