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시대를 맞아 독일 노동조합은 남성이 육아와 가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유모차를 밀며 달리는 남성의 사진은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에서 일·가정 양립과 관련해 발간한 소책자의 표지. 우르줄라 데자슈니더
“‘유연한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은 그동안 기업들이 주로 써왔습니다. 우리는 관점을 이동해 노동자의 입장에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고, 이런 인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2월 독일 베를린에서 만난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양성평등·가족정책부’의 프랑크 마이스너(사진) 박사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전통적 구분이 와해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위치에서 가정과 일의 양립을 얘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지난 10년 동안 독일 사회가 겪은 큰 변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변화를 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독일 8개 산별 노동조합 연합체인 노동조합총연맹은 오래전부터 전담 부서를 만들어 노동자 관점의 ‘일·가정 양립 정책’을 생산해왔다. 마이스너 박사는 2005년부터 10년 가까이 ‘직장 및 가족생활의 조화’ 프로젝트를 총괄해온 ‘일·가정 양립’ 전문가다. 정부 기관·기업·학교 등에 배포된 ‘친가족적 노동시간’, ‘노동자 생애주기별 시간 모델’ 등의 자료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 그는 “경제적 이유로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가족을 돌보는 일에 남자의 참여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마이스너 박사는 독일에서도 일과 가정의 양립을 시도하는 남성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독일 기업의 30~40%는 자기 필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20%가량은 경제적 관점만 우선시하고 친가족 정책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노동시간 정책의 초점이 ‘일하는 아빠’들에게 맞춰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생애주기와 노동을 조화시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노조의 역할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남성들이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이나 아빠 휴직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베를린/글·사진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