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80만·120만원 지급 판결
“직사살수, 최소 사용범위 넘어”
법적 규정 추상적…남용 여지 여전
“직사살수, 최소 사용범위 넘어”
법적 규정 추상적…남용 여지 여전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다친 시민들에게 국가가 80만~12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경찰의 물대포 사용 기준은 법률과 대통령령에 ‘최소한의 범위’라고 추상적으로만 규정돼 있어, 이런 소액 배상만으로는 물대포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단독 전연숙 판사는 29일 박희진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와 이강실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과도한 물대포 진압으로 부상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박씨와 이씨에게 각각 120만원, 8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밝혔다.
박 대표 등은 2011년 11월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다. 900여명이 도로 4개 차선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며 국회 쪽으로 200m가량 행진하자, 영등포경찰서 경찰관들이 이를 막고 자진해산을 명령했다. 7분간 세 차례 해산명령이 먹히지 않자, 경찰은 곧바로 물대포차로 물을 쏘기 시작했다. 30분가량 5차례에 걸쳐 맑은 물 1만2000ℓ를 뿌렸다. 45도 이상 각도로 흩뿌리는 ‘분산살수’를 15초, 포물선을 그리게 쏘는 ‘곡사살수’를 10초, 사람을 향해 직선으로 쏘는 ‘직사살수’를 세 차례에 걸쳐 8분간 했다. 물포에 맞은 박 대표는 고막을 다치고 이 대표는 뇌진탕을 입었다.
재판부는 “경찰은 생명·신체에 가장 위험을 끼칠 수 있는 직사살수를 가장 긴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했는데, 이는 도로교통 방해를 방지하고 질서를 유지할 목적이더라도 집회·시위 관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를 넘었다”고 지적했다. 또 “경찰은 ‘불법집회이므로 해산하라’고만 했을 뿐 해산명령의 구체적 사유를 고지하지 않아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했다.
물대포의 사용 요건은 법률과 대통령령에 추상적으로만 정해져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위해성 경찰장비는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사용”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장비규정’도 ‘부득이한 경우에는 현장 책임자의 판단에 의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가스차 또는 살수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물대포의 구체적 사용 기준을 법령으로 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2012년 권고를 지금껏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경찰 내부 훈령인 ‘살수차 운용지침’이 그런대로 구체적이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다. 이 지침에서 직사살수는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해산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쇠파이프·화염병 등 폭력 시위용품을 소지하고 경찰을 폭행하거나 △차벽 등 폴리스라인의 전도·훼손·방화를 기도하는 경우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안전을 고려해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해 사용한다”는 대목도 들어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필요 최소한의 원칙에 따른다는 기본 방침은 변함없다”고 했다.
김선식 송호균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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