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상황에서 산모 금식시간 지킨다며 수술 지연
태아 저산소증으로 태어났지만 1년도 안돼 사망
태아 저산소증으로 태어났지만 1년도 안돼 사망
태아 응급 상황에서 제왕절개 시술을 늦춰 결국 영아를 숨지게 한 병원에 1억여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조휴옥)는 허아무개(38)씨의 가족이 ㅅ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병원은 가족들에게 1억6146만여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허씨는 2012년 11월 출산을 위해 ㅅ병원에 입원했다. 새벽 0시30분께부터 진통이 점점 심해지자 허씨는 새벽 3시께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은 바로 수술을 준비했지만 허씨가 전날 밤 9~10시 식사를 한 탓에 전신마취를 위한 금식시간 8시간이 확보되지 않았다며 수술을 미루고 새벽 5시께까지 분만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새벽 4시35분께 태아심박동이 1분이상 지속적으로 감소해 산모의 자궁파열을 의심할만한 상황이었지만 병원은 그로부터 36분이 지난 5시11분께 응급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산모의 자궁이 파열되면 태반이 자궁벽에서 분리돼 태아가 저산소증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고생 끝에 허씨가 낳은 아이는 호흡과 심박동이 약해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치료를 받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숨졌다. 이에 허씨의 가족은 수술을 지연한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자궁 파열이 된 경우 태아가 저산소증으로 사망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므로 병원이 자궁파열을 의심한 즉시 응급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했다. 전신마취를 위한 8시간의 금식시간이 확보되지 않았어도 척추마취 등을 통한 제왕절개 수술은 가능했고, 금식시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신마취를 했을 때 부작용인 흡인성 폐렴보다 더 심각한 태아 저산소증이 예상되는 경우 전신마취를 통한 수술이라도 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손해의 절반으로 제한했다. 재판부는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신체침해를 수반하고, 특히 출산은 모든 기술을 다하여 진료를 해도 예상 외의 결과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고도의 위험한 행위이므로 모든 손해를 병원에게만 부담지우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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