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방해를 했다”며 검찰에 의해 징계 신청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장경욱 변호사가 “변론 방해를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간첩사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유했다가 국가정보원에 의해 퇴실당한 장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장 변호사에게 200만원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장 변호사는 2006년 11월 ‘일심회’ 간첩사건의 피의자 장아무개씨 변호를 맡아 국정원에서 이뤄진 장씨 신문 때 입회했다. 국정원 수사관은 장 변호사에게 피의자 뒤쪽 대각선 1.5m 떨어진 위치에 앉으라고 했다. 대검찰청의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 운영지침’이 근거였다. 장 변호사는 피의자 바로 옆자리에 앉거나 서있겠다고 주장해 양쪽의 실랑이로 이어졌다. 결국, 장 변호사는 피의자 옆에서 약간 뒤로 떨어진 위치에 앉아 입회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장 변호사가 필기구와 종이를 꺼내며 메모할 준비를 하자 수사관은 역시 지침을 거론하며 신문내용을 기록하면 안된다고 막았다. 또 다시 언쟁이 벌어졌고, 이번에는 메모할 수 있다고 합의한 뒤 신문이 진행됐다.
본격적인 피의자 신문이 시작됐다. 이전 피의자 신문 때 대부분 진술거부를 했던 피의자가 2005년 중국 방문 및 입국 직후 워커힐호텔 카지노를 이용한 사실에 대해 추궁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일부 인정하면서 변명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장 변호사는 수사관에게 “카지노 출입은 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다”며 항의했다. 수사관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카지노 관련 질문을 하자, 장 변호사는 피의자에게 “향후 일체의 진술에 대해서 거부하시라고 조언을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수사관들은 장 변호사에게 진술거부를 권유하는 것은 수사 방해에 해당한다며 항의했고, 장 변호사는 진술 거부 권유는 적법한 변호 활동이라고 맞받았다. 수사관과 장 변호사 사이에 다시 언쟁이 벌어졌고 수사관은 장 변호사에게 즉시 퇴거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불응하다 강제로 끌려나온 장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변론권을 침해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변호인은 피의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능동적으로 수사기관의 신문 방법이나 내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행사를 조언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라며 “변호인이 수사 방법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고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유한 행위를 두고 신문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변호인으로서 정당한 직무수행 중에 있던 장 변호사를 끌어낸 행위는 변호사의 직업수행의 자유,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행위”라며 국가는 위자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정원이 수사방해라며 근거로 제시한 대검 운영지침에 대해서는 행정규칙에 불과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율하는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도 “피의자 신문 참여권은 변호인의 권리”, “수사관들의 직무 집행상 과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국가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국가가 소액 사건에 맞는 적법한 상고 이유를 내세우지 못했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검은 장경욱 변호사를 포함한 민변 변호사 7명을 수사방해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신청을 했다. 당시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민변 변호사들이 일심회, 왕재산 등 각종 간첩사건에서 물의를 빚어왔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히려 당시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변호인의 변론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에 손해배상을 판결한 셈이다.
민변은 논평을 내 “탈북자 간첩사건이 계속 무죄가 나는 이유는 방어권이 취약한 탈북자를 상대로 허위자백을 하게 한 것이다. 검찰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적 행태에 대해 스스로 철저한 개혁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한 변론활동을 수사방해로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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