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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리해고’ 허용범위 계속 넓혀주는 대법원

등록 2014-11-14 20:35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오른쪽)과 조합원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오른쪽)과 조합원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따른 것으로 유효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조항 확대해석 판결 잇따라
대법원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을 확대해석해 집단해고의 문을 계속 넓히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본 하급심 판결을 깨는 대법원의 주요 판결에 대법관 출신 전관 변호사들이 사쪽 대리인으로 나서는 점도 눈에 띈다. 노동계·시민사회에서는 정리해고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을 고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정리해고는 1998년 외환위기를 구실로 근로기준법에 도입됐다. 노동계의 반발 속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자 선정 △노조와의 성실한 사전 협의를 그나마 ‘안전장치’로 만들어놨다.

이런 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폭넓게 인정하는 식으로 사쪽에 유리한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 이듬해인 1999년 ㅍ용역업체에서 해고당한 3명의 해고 무효 소송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 함은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되지 않고,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보아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도 포함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한 게 신호탄이다.

대법원은 2002년 이 판례를 확장해 ‘장래 위기 대처를 위한’ 경우도 인원 감축의 객관적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 포함시켰다. 1999년 한국상업은행과 한일은행(현 우리은행)이 합병하면서 정리해고당한 한아무개씨가 낸 소송에서 1·2심은 해고 당시 한일은행 경영 상황이 호전되던 점을 고려해 정리해고 요건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란,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해 인원 삭감이 객관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된다”며, 해고가 무효라고 한 항소심 판결을 깼다. 이후 하급심에서는 이 판례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 조항의 입법 취지를 고려해 실질적으로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진 경우에만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법원은 사실상 인용되지 않았던 이 판례를 2012년 콜텍 사건에 적용했다. 당시 콜텍은 기업 전체로는 흑자였지만 대전공장에서 적자가 난다는 이유로 40여명을 해고했다. 항소심은 “경영상 긴박한 필요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해고 무효 판결을 내놨지만, 대법원 1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기업의 전체 경영실적이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일부 사업부분이 경영 악화를 겪고 있어 (장래에) 기업 전체의 경영이 악화될 우려가 있으면 잉여인력 감축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해 한발 더 나아갔다. 인력 감축 규모는 ‘경영 판단’의 문제라고 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동서공업 해고자 조아무개씨 등 13명이 낸 소송에서 “기업의 잉여인력 중 적정 인원이 몇명인지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도 해고 무효로 판단한 1·2심을 뒤집었다. 13일 쌍용차 사건에서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도 이 판례를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한 근거로 사용했다.

대법원의 정리해고 기준 완화 흐름의 줄기는 또 있다. 근로기준법은 정리해고의 네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정당한 해고라고 본다. 하지만 대법원은 2000년 예술의전당 직원 이아무개씨가 낸 소송에서 “정리해고 각 요건의 내용은 확정적·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해고가 각 요건을 모두 갖춰 정당한지 여부는 각 요건을 구성하는 개별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이 판례가 나온 뒤로 네 가지 요건 중 어느 하나가 미흡하더라도 다른 것들이 충족되면 정리해고가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판결 성향에 대해 “근로기준법의 정리해고 조항을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해석한다기보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법원의 해석에 의해 변형시키는 월권적 해석으로 객관적 법해석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정리해고 기준 완화 판례는 대체로 요건을 엄격히 본 하급심을 깨고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런 사건들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사쪽 변론에 나서고 있다. 콜텍 사건에서는 신성택 전 대법관(율촌), 동서공업 사건은 손지열 전 대법관(김앤장), 쌍용차 사건은 김용담 전 대법관(세종)과 박일환 전 대법관(바른)이 사쪽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성택 전 대법관은 1999년 정리해고 기준을 완화한 ㅍ용역업체의 상고심 재판부에 참여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대법관들이 기업에 유리한 판결을 하고 퇴직 뒤 대형로펌에 가서 기업들을 변호하는 일이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법원이 결국 기득권의 대변자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정리해고가 기업 재량이라고 하면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법원을 지지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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