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랑하는 사이” 주장 받아들여
9년 중형 선고한 원심 깨고 무죄 판결
9년 중형 선고한 원심 깨고 무죄 판결
대법원이 수개월간 여중생과 동거하면서 성폭행을 한 혐의로 기소된 40대에 대해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여중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로 구속 기소된 ㄱ(45)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한 ㄱ씨는 2011년 7월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갔다가 자신보다 27살 어린 ㄴ양(당시 15)을 만났다. ㄱ씨는 ㄴ양을 불러내 승용차 안에서 키스하려다 ㄴ양의 거부로 실패했다. 며칠 뒤 다시 불러내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고, 다시 며칠 지나 자신의 집에서 성관계를 했다. 이들의 관계는 지속됐고, 이듬해 4월 ㄴ양은 임신 사실을 알고 가출해 ㄱ씨 집에 머물렀다. ㄴ양은 9월 아이를 낳은 직후 ㄱ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ㄱ씨는 ㄴ양과 서로 좋아서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ㄴ양은 또래 학생들에 비해 표현 능력이 미숙하고, 부모 또래인 남성을 며칠 만에 이성으로 좋아하게 돼 원만하게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일반인의 상식에 비춰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몸이 아픈 상태에서 갑작스런 강간 시도에 제대로 저항을 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ㄴ양이 1년 이상 신고를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가족에게 알려질 경우 극도로 수치스러울 뿐 아니라, 난폭한 성질의 ㄱ씨 앞에서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ㄱ씨는 ㄴ양이 임신한 기간에 다른 범죄 혐의로 구속됐는데, ㄴ양이 구치소에 거의 매일 찾아와 ‘사랑한다’는 취지의 편지를 주고받은 점을 근거로 연인관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도 “ㄴ양이 임신해 배가 부른 상태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웠고, 그런 내용으로 편지를 적지 않으면 피고인이 크게 화를 내곤 했기 때문에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나 드라마 대사, 노래 가사 등을 참고해 마음에도 없는 내용을 적었다는 진술은 정황상 신빙성이 높다”고 밝혔다. 다만 형량을 징역 9년으로 낮췄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ㄴ양이 ㄱ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카카오톡·편지 등이 억지로 쓴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ㄴ양이 피고인에게 보낸 많은 접견서신 등에는 소소한 일상 이야기가 쓰여있고, 피고인을 사랑한다, 많이 보고싶다, 함께 자고 싶다, 고맙다, 힘내라는 내용으로 채워져있다. ㄴ양은 피고인의 비위에 맞춰 허위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하지만, 피고인을 접견한 횟수나 대화 내용, 편지 내용은 물론이고, 색색의 펜을 사용하고 하트 표시 등 각종 기호를 그리고 스티커로 꾸미기도 한 점 등을 보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구치소 접견대화록에서 ㄱ씨가 주거지 인근에 성폭행범이 사는지 확인하고 ㄴ양에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말라”고 한 것도 성폭행범과 피해자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결국 원심은 위력에 의한 청소년 추행·강간죄에 있어서 폭행·협박의 정도에 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은 만 13살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맺으면 무조건 성폭행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만 13살 이상부터는 위력에 의한 성관계임이 입증돼야 성폭행으로 본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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