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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유신 시절’ 고문 피해자, 38년 만에 무죄 받아

등록 2014-11-24 12:00수정 2014-11-24 13:52

중앙정보부 남산 대공분실 끌려가 온갖 고문 당해
“조총련 형한테 돈 받았다” 허위 자백…징역 10년
대법원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 당한 사실 인정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 초도 순시 오시니까 보고서 작업 좀 도와주시죠. 내일 오전까지 하면 됩니다.”

1976년 12월3일, 제주도에 살던 양아무개씨 앞으로 도청 공무원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이 왔다. 양씨는 어머니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이들의 차에 올라탔다. 도청으로 가는 줄 알았던 차는 중앙정보부의 제주지역 대공분실에 도착했다. 덩치 큰 남성이 친절하게 “잘 오셨습니다”라며 양씨를 지하실의 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가자 조금 전 친절한 모습을 보이던 사람은 완전히 다른 얼굴로 돌변했다. “너 이놈의 자식, 너희 형이 조총련인데 왜 신고를 하지 않았냐?”

그때부터 고문이 시작됐다. 중앙정보부는 양씨를 서울 남산 대공분실로 옮겼다. 수사관이 “자백하지 않으면 여기서 나갈 수 없다”며 백지 200장을 주고 태어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삶을 모두 쓰라고 했다. 다음 날부터는 팬티만 입혔다. 취조실의 커다란 등불 2개의 빛이 너무 세 양씨는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방은 매우 더웠고 훈풍기가 가동돼 열기가 심해졌다. 각목 3개가 있었고 바닥은 물이 흥건했다. 한 수사관은 “이 고인 물속에는 전선이 있다. 협조하지 않을 때는 전기 고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전기의자와 더 고통스러운 고문 기구들이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협박했다.

수사관은 5∼6일간 잠을 재우지 않았다. 양씨가 졸릴 때마다 각목으로 몸을 툭툭 찔러댔다. 때려도 꾸벅꾸벅 졸릴 지경에 이르러서야 잠을 자게 해줬다.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카락은 많이 빠져있었다. 무척 가려워 머리에서 피가 날 때까지 긁었다. 수사관이 묻는 말에 사실대로 답하면 “그게 아니잖아”라며 욕설과 협박을 일삼았다. 양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기력해졌다. 저 사람들의 요구에 응해야할 것 같았다. 수사관이 “이렇게 했잖아?”라고 협박하면 “좋다. 그렇게 했다고 하겠다”라고 합의했다.

양씨는 곧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됐고 며칠 뒤 검사가 찾아왔다. 담당 검사에게 고문당한 사실을 말하고 중앙정보부에서 한 얘기는 진실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검사는 “이러면 안 된다. 검찰에서 부인하면 다시 중앙정보부로 가서 조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끔찍한 고문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에 검사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양씨는 이듬해 1월 반국가단체인 조총련 소속인 형과 접촉하고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양씨는 법원에서도 감히 진실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변호사가 양씨를 찾아와 몇 가지 물었지만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법정에서도 고문 사실을 주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그런 내용을 물어보지 않았다. 양씨는 그해 7월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이듬해 5월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양씨는 2011년 12월 재심을 신청했다. 양씨는 법정에서 38년 전 당한 일을 상세히 증언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강영수)는 지난 8월 “양씨가 불법 구금당해 고문·가혹행위를 당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지난 13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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