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김아무개(73)씨가 2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낙엽 청소를 끝낸 뒤 경비초소로 돌아와 물을 마시려 책상 아래 넣어뒀던 물통을 꺼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파트 경비 대량 해고 움직임
“택배는 누가 받나” “방범 불안 커질라”
돈 더 내더라도 유지하는 곳도
“택배는 누가 받나” “방범 불안 커질라”
돈 더 내더라도 유지하는 곳도
내년부터 시행되는 ‘경비노동자 최저임금 100% 보장’을 앞두고 ‘임금 인상’ 대신 ‘대량 해고’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일부 대단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감원 대신 ‘함께 가는’ 방안이 시도되고 있다. 최소한의 경비인력 필요 등 현실적 이유도 있지만, 최근 분신 사망 사건으로 경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에 ‘사용자’인 입주민들이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다. 감원 여부를 결정하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11월 말~12월 초가 대량 해고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17개 동 960가구가 사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라이프·청구·신동아아파트는 경비원 최저임금 100% 적용과 관련해 지난 9월 입주민 찬반 투표를 했다. 경비원을 줄이는 대신 자동문과 폐회로텔레비전(CCTV), 중앙통제실을 설치하자는 안건이었다. 하지만 입주민들 사이에 반대 여론이 형성되면서 안건은 부결됐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25일 “택배 수령과 분리수거 업무를 직접 해야 하는 불편함 말고도 초소마다 있던 경비원이 사라지는 데 대한 입주민들의 불안이 컸다”고 했다.
노원구의 ㅈ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조만간 경비원들 임금을 내년에 16% 정도 올리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3400여가구가 입주한 이 아파트 관계자는 “애초 관리비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은데다 가구당 한달에 3000원 정도만 더 부담하면 되는 수준이다. 경비원 임금 인상에 대한 입주민들의 불만이 크지 않다”고 했다.
경비원 분신 사망으로 열악한 경비원 처우가 알려진 것도 아파트 입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게 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라면 한 봉지, 커피 한잔 값 더 쓴다는 셈 치고 경비원들한테서 그만큼 더 좋은 서비스를 받자고 말하는 주민들도 있다”고 했다. 안성식 노원노동복지센터 사무국장은 “최근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각 아파트에서 여론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수 아파트는 경비원을 감원하지 않더라도 ‘무급 휴게시간’을 늘리는 등의 방법으로 임금 인상분을 ‘상쇄’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무급 휴게시간은 경비원들에게 실질적 경비 노동을 시키면서도 임금 산정에서 제외하는 시간으로, 최저임금 100%(2015년부터 시급 5580원) 적용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금은 올려주지 않는 편법으로 쓰이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ㅅ아파트도 최근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어 최저임금 100%를 적용해 고용을 유지하는 대신 휴게시간을 일부 조정하기로 했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참여연대 등은 이날 ‘경비노동자 대량해고 대책 마련 및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범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를 꾸렸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경비노동자는 25만명에 이르고 최저임금 적용에 따른 대량 해고는 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고령화 시대에 노년의 좋은 일자리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조만간 전국적인 아파트 경비원 해고 상황을 정리해 발표할 계획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경비원 해고는 30일 전에 예고해야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이번주 월례회의에서 경비원 감원이나 해고 여부를 결정해 통보해야 한다. 앞서 경비원 분신 사망 사건이 일어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는 19~20일 경비원 106명에게 해고 예고 통보장을 보내 논란을 일으켰다.
박기용 최우리 서영지 박태우 기자 xeno@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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