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긴급조치 위반 관련
‘위헌판단 전에는 청구 어렵다’
정동영 등 29명에 승소 판결
대법은 과거사위 결정일로부터
6개월로 시효 좁게 해석해와
‘위헌판단 전에는 청구 어렵다’
정동영 등 29명에 승소 판결
대법은 과거사위 결정일로부터
6개월로 시효 좁게 해석해와
대법원이 최근 유신 때 ‘실정법’인 긴급조치를 수사·재판기관이 집행한 것 자체는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해 논란이 일었는데, 서울고법이 한 달 만에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는 판결을 했다. 과거사 배상 범위를 자꾸 좁히는 최고법원의 판결을 하급심이 거스른 것이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10부(재판장 김인욱)는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등 29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깨고 “총 1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정 상임고문 등은 1974년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활동에 동조했다는 혐의(대통령 긴급조치 1·4호 위반)로 영장 없이 체포·구속돼 60~141일간 구금됐다가 기소유예 처분 등을 받고 풀려났다. 이들은 2012년 9~12월 불법 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당시 사법경찰관 등은 (긴급조치에 따른) 피해자들의 체포·구속에 있어 유신헌법이 보장하던 최소한의 적법절차도 지키지 않았다”며 “이는 위헌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는 지난달 27일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가 판결문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수사와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수사 과정의 위법행위와 유죄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구타 및 각종 고문, 밤샘 수사, 협박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긴급조치에 따른 체포와 구금 자체에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물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재판부는 과거사 피해자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도 긴급조치 위헌·무효 판결일로부터 3년까지로 폭넓게 인정했다. 앞서 1심은 정 상임고문 등이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의 민청학련 사건 진상조사 결과 발표(2005년 12월) 이후 3년 안에 소송을 냈어야 한다고 봤지만, 서울고법은 긴급조치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무효 판단(2010년 12월16일) 뒤 3년 안에 소송을 내면 된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시효 문제에서도 피해자들에게 인색한 판결을 해온 대법원의 기조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과거사 피해자들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시효를 손해를 안 날로부터 6개월로 못박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3년으로 한다고 판결해 피해 구제의 폭을 좁혀놓은 바 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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