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국 자료제출 요구에 소극적 조사위원 처우도 일용잡급 대우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종수)의 활동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1월 발족한 뒤 아무런 조사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때 출범한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 부일장학회 헌납 사건 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가장 큰 이유로 경찰 수뇌부의 의지 부족을 꼽고 있다. 위원회 관계자는 “허준영 경찰청장은 ‘남김없이 밝히겠다’고 하지만 보안국 실무자들은 보안 규정을 내세워 자료 열람·제출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어려움을 겪었다”며 “최근에야 어느 정도 협조하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조사대상 부서인 경찰청 보안과가 예산 관리와 민원 접수 등을 담당하는 지원팀을 맡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그나마 지원업무 전담자가 한 명뿐인 점도 지원 의지를 의심케하는 대목으로 꼽힌다. 국정원과 국방부의 과거사위 지원팀은 민·관 합동으로 구성됐으며, 국방부의 경우 모두 9명으로 이뤄져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일부 조사관들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고, 심지어 일부는 얼마전 출범한 국방부 과거사위 조사관 선발에 응시했다가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은 “(별도 계약직으로 선발한) 국정원이나 국방부와 달리 경찰은 애초부터 조사관을 일용잡급으로 뽑아 보수와 대우에서 큰 차이가 난다”고 아쉬워했다.
여기에 위원회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조사팀장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다수는 “전 팀장이 너무 독단적이었다”고 교체를 두둔한 반면, 일부는 “일용잡급인 민간 조사관이 실제 아무런 조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책임을 팀장 한 사람에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런 이유 등으로 일부 민간위원들은 위원직 사퇴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은 “앞으로 한달 정도 지날 때까지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그때 봐서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한 사건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10대 사건 모두에 인원이 투입돼 진척이 덜 됐을 뿐”이라며 “경찰 내부 협조가 안된다는 말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이종수 위원장은 “위원회 활동 전반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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