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2월27일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유신헌법 공포식. 그래 10월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박정희는 11월21일 91.5%의 찬성률로 국민투표를 통과한 유신헌법을 이날 공포함으로써 종신독재의 시대를 열었다. 보도사진연감
유신정권 시절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유신헌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이에게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김흥준)는 유신헌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불법 체포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고 박병기(사망 당시 39)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박씨는 1972년 10월 경북 영주읍에 있는 길에서 행인들이 지나가는 가운데 “헌법 개정안(유신헌법)은 막걸리로 조지자. 헌법 개정은 독재”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사관들은 박씨가 계엄포고령이 금지한 유언비어 날조·유포죄를 저질렀다며 불법 체포했다. 같은 달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계엄 포고령을 선포한 터였다. 체포된 박씨는 2달여 동안 수사기관에 불법 구금됐다. 박 대통령은 비상국무회의에 헌법개정안을 상정해 다음달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박씨의 아들은 지난 8월 “아버지는 이 사건으로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 석방된 뒤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9년6개월 만에 39살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셨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당시 검사와 사법경찰관들은 ‘군사상 필요한 때’도 아니었는데도 박씨를 영장 없이 체포·구금해 불법 체포, 감금죄를 저질렀다”며 재심 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박씨의 발언은 유신헌법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다소 격하게 표명한 것일 뿐, 유언비어의 날조·유포에 해당한다거나 당시 그런 견해 표명을 군사적으로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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