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아빠’ 김영오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영오씨, CBS 라디오서 2014년 삶 회고
“자식 죽었는데 ‘축하’ 받는 세상 말 되나”
“자식 죽었는데 ‘축하’ 받는 세상 말 되나”
“아이들 주검이 인양될 때마다 우리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사고 나고 일주일이 지나니까 가족들 사이에서 ‘축하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자식이 죽었는데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그런 세상이 됐다는 게 말이 됩니까.”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라디오에 출연해 세월호 참사 뒤 멈춰버린 2014년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김씨는 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2014년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해”라고 말했다. ( ▷ 관련 기사 링크 )
“구조 활동을 도우러 민간인들이 왔는데 장비가 없어요. 해경이 장비를 안 빌려줘요. 왜 민간잠수사에게 장비를 지원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위에서 승인이 안 났다고 말해요. 이런 상황을 직접 봤는데 오죽했겠어요. 증거 하나를 요청해도 중요한 것은 다 잘렸어요.”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을 약속했지만, 유가족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참사 뒤 100일을 앞두고 국회 앞에서 농성도 하고 청와대로 찾아갔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답을 해주는 이가 없었다. ‘단식’이라는 결단이 필요했다. 원래는 3일만 하기로 했다. 그게 46일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열흘쯤 지났을 때는 이도 못 닦았어요. 잇몸에서 피가 나서 양치질을 못했죠. 한 달쯤 되니까 갈비뼈에 장기가 눌려서 앉아있지도 못했어요. 그 고통보다 더 가슴 아팠던 것은 국회의원들의 막말이었어요. 단식을 제대로 했으면 벌써 실려 갔어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농성장을 찾았다. 국민들이 찾아와서 함께 단식하기도 하고 만류하기도 했다. 유민 아빠는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었다.
“일베 회원들이 농성장에 와서 고기도 구워먹고, 자장면도 시켜먹고 했었죠. 심지어 지금도 제가 초코바를 먹으면서 단식했다고 주장해요. 단식 중에 음식이 들어가면 가스가 차고 염증이 생겨서 초코바 같은 것은 먹을 수가 없거든요.”
김씨를 괴롭힌 것은 또 있다. 이혼 경력이 알려지면서 험악한 댓글과 신상털이가 이어졌다. 연예인들이 악성 댓글 때문에 자살까지 결심하는 걸 직접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정신병자가 될 것 같더라고요. 은행에서 모든 자료를 다 찾아왔어요. 휴대전화비 내준 것, 보험료, 양육비 보내준 자료들 다 떼서 경찰서에 증거 자료로 제출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양육비 10원도 안 줬다는 악플이 계속 달려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유민 아빠라서 행복했다. 하지만 딸에게 진 빚이 많다. 아이들을 억울하게 떠나보내기 전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그저 미안하고 죄스럽다.
“평소에 제가 사회에 너무 무관심해서 세월호 참사를 만든 것 같은 죄책감이 들어요. 사회가 잘못 돌아가고 있으면 시민사회단체와 같이 활동도 해주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렇게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죄책감이 커요.”
최근 김영오씨는 ‘못난 아빠(이제야 철이 드는 못난 아비입니다)’라고 고백한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전국을 다니며 간담회를 열고 국민들을 만난다. 유민 아빠가 국민들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세월호 특별법 안에 수사권·기소권이 담겼으면 유가족들이 더 싸울 필요가 없을 텐데, 법안이 미비해서 국민들한테 도움을 요청하러 다니고 있어요. 국민들이 잊어버리면 진실이 묻혀요. 이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나더라도 전원 구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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