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서울대 교수 성추행 사건의 이면…‘오만한 천재의 추락’
서울대 교수 성추행 사건의 이면…‘오만한 천재의 추락’
서울대 교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학생들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 ‘피해자 엑스(X)’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대학본부 앞에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대와 예일대 거친 세계적 학자
글쓰고, 축구하고, 힙합 추고
학생들과 격의없이 어울리는
천재수학자는 ‘완벽남’이었다 그의 자신감은 거침없었다
격의 없는 것처럼 추근댔고
생사여탈권 맡긴 제자들은 참았다
‘간판스타’에겐 학교도 뭐라 못해
그의 일탈은 드러날 수 없었다 피해자 X는 한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모인 피해 학생들은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피해자 엑스(X)’를 꾸려 사례를 수집했다. 피해자 X는 “수학자인 강 교수가 학생들을 하나의 변수로 여기고 동일한 수법으로 수많은 학생들에게 성범죄를 했다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11월10일부터 사흘간 확인된 피해자만 22명이었다. 이들이 밝힌 최초의 피해 시점은 2004년으로 거슬러 간다. 정확히 10년 전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강 교수가 지난 10년간 학생들에게 접근한 방식은 비슷했다. 가령 자신의 컨디션이나 일정, 날씨, 저녁식사 제안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었다. 문자메시지는 ‘비가 오니 생각나네’ ‘오늘 저녁 뭐 해?’ ‘저녁 사줄까?’ 등의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강 교수의 일방적인 연락을 모른 척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학생들이 무시하거나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 강 교수는 ‘내가 잘해주니까 다들 당연하게 생각한다’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누가 널 여자로 대한대?’ ‘나야말로 당황스럽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비대위는 <한겨레>에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5년 이상 연락을 했다. 무시하거나 거부 의사를 밝히면 화를 내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학생이 어떤 성격인지 살피고, (학생들이) 물러서지 않아야 (연락이) 뜸해졌다”고 했다. 비대위는 이렇게 수집한 사례를 바탕으로 지난달 26일 ‘서울대 강 교수, 학생 상대로 상습적 성범죄’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들은 “제안을 피해보려 해도 2~3주 뒤 일정까지 물으며 약속을 잡았다. 저녁식사 자리에 나오면 마치 이성을 대하듯 행동했다. 식사에 술을 곁들여 먹이거나 2차로 자리를 옮긴 뒤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강 교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터질 문제가 결국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대학의 한 교수는 “첫 보도만 보고도 ㄱ교수가 강석진 교수인지 알았다. 주변 사람들도 저 사람은 강 교수라고 얘기할 정도로 서울대 내부뿐 아니라 (수학계)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얘기다. 부모님이나 외할아버지 모두 인문계 학계에서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고, 강 교수도 말발이 좋고 글도 잘 쓰고 운동에도 소질이 있다. 다방면에서 자신 있다 보니까 세상 모든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고 했다. 강 교수는 서울대 연구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2001년 고등과학원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고, 3년 뒤 다시 서울대로 돌아왔다. 그는 서울대 학내신문인 <대학신문>과의 인터뷰(2004년 9월4일)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그리워서 돌아왔다”고 했다. 서울대의 한 동료 교수는 “교수들은 강석진 교수가 ‘심할 정도’로 학생들과 격의 없다는 정도만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 간접적으로 학생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더라고 듣긴 했지만, 기사 보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 문제를 강 교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지난 10년간 이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이 사건은 단순히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던 교수와 학생들 간의 갑을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 상징적 사건이다. 카이스트 대학원생인 김영민(가명·29)씨는 지도교수를 ‘중소기업 사장’에 빗댔다. “지도교수는 대학원생 입장에서 중요한 권한을 다 갖고 있다. 졸업 권한을 갖고 있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학생들에게 인건비를 얼마나 줄 것인지도 결정한다. 모든 결정이 지도교수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어 ‘갑질’을 하면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그는 “최근 카이스트에서도 교수의 성추행이 문제가 됐고, 교수가 노트북으로 대학원생의 머리를 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은 교수가 권한을 갖고 있는 대학원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대 수리과학부를 졸업한 한 대학원생은 “특히 강 교수는 수학자로서 굉장히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 밑에서 공부하면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를 받을 수 있고, 행여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취직하는 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피해를 당하면서 참는 부분이 있다. 졸업하고 자리잡고 나면 잊어버리려고 노력하고, 이걸 문제 삼지 않는 게 반복된 것”이라고 했다. 피해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갑을 관계’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고 비상대책위는 말했다. 비상대책위는 그동안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못한 데 대해 “대학교수와 학생은 직장 상사와 부하보다도 더 철저한 갑을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직장은 이직이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대학은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취업에 반영되는 학점은 교수의 고유권한이며, 만약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교수의 손에 평생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업적이 뛰어난 교수를 학교 안에서 감싸주는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한 학생은 “서울대 입장에서는 굉장히 손해일 수 있다. 연구실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인데 정확한 증거 없이 문제를 삼기에 아깝다고 생각할 수 있다. 교수 사회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걸로 모든 걸 용서받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서울대는 특히 더 그렇다”고 했다. 공부 잘하면 모두 용서받는 대학 분위기 서울대는 이 사건이 벌어지고 지난달 26일 강 교수가 사표를 제출하자 24시간도 안 돼 면직처분 방침을 밝혔다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은 받은 바 있다. 면직처리가 되면 강 교수는 퇴직금·연금·재취업에 전혀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봐주기’를 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이 일자, 그때야 이를 번복하고 사표 수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강 교수는 지난 3일 인턴 여학생과 제자를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수감 됐다. 백승한 교무부처장은 “강 교수가 기소되면 바로 직위해제가 된다. 학내 인권센터 진상조사 결과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은 이번 기회에 “교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정재 서울대 교수협의회장은 “그동안 논문을 많이 쓰고 외국 유력 전문지에 글이 많이 실리고 그러면 모든 허물을 덮어왔던 거 같다. 실제 대학에서 교수의 인성보다는 업적을 더 중요시하는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지방국립대 등에서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내 옆방에 있는 우리 동료랑 계속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연구 실적이 높으면 선생님의 일탈은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 일탈을 인정하고라도 그런 업적을 가져가야 하는지 업적이 훌륭해도 허물이 있으면 안 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나 각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학은 다른 조직에 비해 분위기가 자유롭기 때문에 교수들 스스로 자각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학교 당국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운동을 좋아했던 강 교수는 그의 책 <축구공 위의 수학자>에서 1990년대를 풍미한 농구스타 허재 얘기를 한다. 허재 선수는 경기 전날 숙소를 이탈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을 해 1993년 열린 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대회 대표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다. 여기에 대해 강 교수는 이렇게 썼다. “형편없는 직업의식을 가진 선수가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다른 누구보다도 농구를 잘한다면 그의 직업의식을 트집 잡아 국가대표팀에서 제외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챕터의 소제목은 이렇게 달려 있었다. ‘오만한 천재의 추락’.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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