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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한항공 위기관리 ‘패착의 연속’

등록 2014-12-14 20:03수정 2014-12-14 21:38

‘땅콩 회항‘ 파문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12일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 항공안전감독관실로 출석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땅콩 회항‘ 파문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12일 서울시 강서구 방화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 항공안전감독관실로 출석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재벌 권위주의 의사결정 자승자박
첫날 보도 뒤 밤 늦게까지 무대응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실패

“대한항공 내부에도 처음부터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 것
하지만 그런 의견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태가 지난 8일 <한겨레>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지 1주일이 지났다. 지난 1주일 동안 대한항공이 이 사건에 대응하면서 보인 모습은 기업 위기관리 측면에서 봤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패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속도, 즉 발빠른 대응이다. 문제가 터진 뒤 기업의 공식적인 대응이 늦어질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여러가지 억측이 난무하기 쉽다. 이번 사태가 처음 보도된 건 8일 조간신문을 통해서였다. 첫 보도에서부터 사태의 윤곽이 대부분 드러났고, 이미 이날 오전 중 거의 모든 매체가 이 소식을 다루면서 대중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처음 이 사건에 대한 공식 해명을 내놓은 것은 이미 여론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인 이날 밤 10시께였고, 그마저도 일방적인 보도자료 배포 형식을 취했다.

때늦은 대응보다 더 결정적인 패착은 ‘잘못을 부하 직원에게 떠넘긴’ 해명의 내용이었다. 당시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이 “지나친 행동이었다”면서도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제기와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컨설팅기업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는 “위기관리 컨설팅에서 ‘아웃사이드-인’을 강조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제일 중요한 것이 외부의 시각에서, 여론의 시각에서 우리 기업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론의 시각에서 보면 사무장이나 승무원이 그만한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았다. 대중은 사무장과 승무원과 더 공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데 실패한 대한항공은 조 전 부사장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방향으로 대한항공이 작성한 해명자료에는 ‘사무장이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다’거나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등 이후 거짓 논란의 빌미가 될 내용이 들어갔다. 결국 여론은 대한항공의 첫 해명을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역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나마 ‘사과’라고 할 수 있는 게 나온 건 9일 오후부터였다. 하지만 기업 위기관리에서 늘 강조하는 ‘처음부터 크게 사과하라’는 것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조 전 부사장은 9일 오후 기내서비스와 호텔사업부문을 총괄하는 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다음날에는 부사장직 사표를 제출했고, 또 이틀 뒤에는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그룹 내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김호 대표는 “처음부터 다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여론의 눈치를 보며 찔끔찔끔 내놓는 식으로 사과를 했다. 결국 잃을 것은 모두 잃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과였다”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의 위기관리가 패착을 거듭한 이유로 홍보 전문가들은 재벌의 권위주의적 의사결정 구조를 지적한다. 대한항공 홍보실이 작성한 해명자료 초안은 8일 발표된 것과 내용이 상당히 달랐지만, 윗선의 논의 과정에서 대폭 수정됐다. 익명을 요청한 대한항공 고위 임원은 “오너에게 입바른 소리를 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재벌그룹의 홍보담당 실무자는 “대한항공 내부에도 처음부터 조 전 부사장이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재벌기업이나 의사결정 과정에서 그런 의견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구조다. 우리 그룹에서도 오너(총수 일가) 관련 사건에 대해 홍보팀이 오너의 책임을 요구하는 의견을 냈지만 묵살됐다”고 말했다.

김호 대표는 “용감한 임원이 회사를 위해 직언을 해도 회사 내 경쟁자나 오너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이 ‘당신 미쳤어? 부사장님이 왜 사과해야 돼?’ 하며 역공을 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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