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딸 위해 수천만원 주고 문제지 빼내
고등학생 딸을 위해 중간·기말고사 문제지를 빼내려고 수천만원을 건넨 학부모와 그 돈을 받은 교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시험문제를 알려준 교사는 학생에게 ‘갑작스런 성적 향상’에 대해 주변에 변명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학생은 그런 상황을 녹음해 놓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재판에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정석)는 2012년 4월부터 1년 반 동안 학부모 ㅎ(53)씨에게 2000만원을 받고 ㅎ씨 딸에게 세 학기에 걸쳐 국어·영어·수학 시험 문제지를 건넨 혐의(배임수재·업무방해)로 기소된 서울 ㅈ여고 교사 ㅁ(57)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고 16일 밝혔다. 교사에게 돈을 준 ㅎ씨도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ㅁ씨에게 수학·영어 문제지를 전달한 같은 학교 교사들도 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ㅁ씨는 2012년 4월 ㅎ씨한테서 ‘수학시험 출제 선생님한테 부탁해 중간고사 수학시험 문제를 가르쳐주고 성적이 오르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뒤 ㅁ씨는 학교 흡연실에서 수학시험을 출제한 교사 ㅇ씨에게 부탁해 학교 진학상담실에서 ㅎ씨의 딸에게 수학시험 문제 40~50개의 풀이과정과 정답을 알려주도록 했다. 다음달 ㅁ씨는 학교 앞 일식당에서 ㅎ씨를 만나 딸에게 시험문제를 알려 준 대가로 250만원을 받았다.
ㅁ씨는 같은 수법으로 ㅎ씨에게 5차례에 걸쳐 2000만원을 받고, 이 가운데 400만원을 ㅇ씨에게 전달했다. 그 대가로 ㅁ씨는 2학년 1학기~3학년 2학기 중간·기말고사 시험을 앞두고 자신의 집이나 승용차 안에서 ㅎ씨의 딸에게 국어·영어·수학시험 문제지 총 8건을 전달했다.
ㅁ씨는 ㅎ씨의 딸에게 시험문제지를 전달하면서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있는지 여부를 수차례 확인하는 등 범행 적발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ㅁ씨는 ㅎ씨의 딸에게 “85점 넘으면 절대 안된다”면서 담임교사나 친구들에게 갑자기 성적이 오른 데 대해 변명할 방법 등도 지도했다.
하지만 ㅎ씨의 딸은 ㅁ씨에게 시험문제지를 전달받으면서 3차례에 걸쳐 그 상황을 녹음했다. ㅎ씨는 딸이 대학입시에서 낙방하자 ㅁ씨에게 건넸던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ㅁ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딸이 녹음한 파일과 ㅁ씨에게 지급한 금품내역서를 같은 학교의 교사를 통해 경찰에 내도록 했다. 내신성적을 돈으로 사고팔던 사이에 금이 가면서 결국 수사기관에 성적조작 혐의가 적발된 셈이다.
재판부는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마저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익상의 요청을 간과할 수 없다. 같은 처지의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학교교육 자체에 대한 믿음마저 심각하게 훼손시켰다”며 두 사람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ㅎ씨의 딸은 어머니와 선생님의 성적조작 혐의가 드러나면서 내신성적이 0점 처리돼 다시 준비중인 대학입시에 불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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