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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화 한번 안낸 착한 아이…함께 만든 ‘버킷 리스트’ 시작도 못하고 떠났니

등록 2014-12-18 20:25수정 2014-12-18 21:31

잊지 않겠습니다
변호사 꿈꾸던 박성빈에게 언니가

하늘에서 기다릴 우리 성빈이에게.

성빈아, 잘 지내지? 이렇게 성빈이에게 편지를 쓰는 건 오랜만이다. 예전에 성빈이가 마음속에 끙끙거리던 고민을 일기나 다이어리에 써놓으면, 언니가 몰래 보고 잔소리와 조언으로 뒤범벅된 장문의 편지를 그 자리에 꼽아 놨었지. 착한 너는 너의 비밀을 엿본 언니한테 화도 내지 않고, 오히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했었어. 이제는 너의 고민이나 걱정에 대한 편지가 아니라, 안부의 편지를 쓰는구나.

고작 5살 많은 이 언니는 항상 너의 부족한 모습만 봤고, 그 모습이 꼭 나랑 닮아서 더 화도 내고 짜증도 냈는데. 너는 단 한 번도 언니한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지. 오히려 미안하다고, 알겠다고 했었어. 바보 같은 언니는 ‘언니라서, 동생이니까’하는 생각만 하며 너를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아. 지금 다시 생각하면, 너는 언니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사랑했었던 거였구나. 그래서 내가 나랑 닮아서 혼을 냈었던 그 모습마저 좋아했던 거였구나. 나를 똑같이 닮으려고 했었던 거였구나.

엄마도 싫어했던 언니가 찌그러지게 눈 없이 웃는 모습도, 아줌마같이 내던 웃음소리도, 부모님 앞에서 주책없이 마냥 어린 아이같이 재롱떠는 모습도 다 닮으려고 했던 거구나. 나는 내 동생이 나의 이런 흠을 닮지 않고, 더 예쁜 아이가 되길 바랐는데, 너는 그런 언니의 흠마저 사랑하고 닮기를 바랬던 거구나.

언니가 미국에 있는 3년 동안 네가 예민하고 힘든 시기에 같이 있어주지 못했는데도, 미워하지 않고 너는 항상 너의 자리에서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기대에 부응하면서 언니에게 응원까지 해줬지. 엄마한테 항상 “언니가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니까 저도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라고 하며, 중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장학금과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자랑스러운 내 동생이었지.

미국에 있을 때도 다른 자매들은 전화로 수다도 떨고 뭐 사달라고 조를 때, 언니한테 고민도 털어놓고 좋은 문제집 추천해 달라고 했던 내 동생. 혼자 떨어져 사는 언니가 더 힘들 거라며 나를 더 걱정해 주었던 내 동생. 둘이서 처음으로 간 카페에서 나중에 크면 건물을 하나 사서 한 층은 언니 병원, 한 층은 성빈이 변호사 사무실, 그리고 다른 한 층에는 부모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해놓자고 얘기를 나누며 낄낄거리고 좋아했던 내 동생.

너는 나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고, 나는 너를 방법 없이 보내야 했지만, 성빈이 네가 아직도 내 옆에 있는 거 같다. 언제든 집으로 들어올 것 같다. 성빈이 너는 꼭 언니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에게 주었던 사랑을 다시 되돌려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같이 만든 버킷리스트 1번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 생각으로 언니는 요즘을 살고 있어. 그래도 언니는 착한 내 동생이 하늘에서 걱정하고 미안해 할 까봐 또 걱정이야. 성빈아, 세상에서 가졌던 모든 미움은 다 내려놓고 많이 나눠주지 못했던 언니의 사랑, 항상 옆에서 응원해주셨던 부모님과 이모의 사랑, 그리고 끝까지 함께했던 친구들의 사랑과 함께 하늘나라에서 기다리고 있기를 바란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하는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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