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오다이바의 토이저러스에서 아이가 2014년 파워레인저 신상품을 구경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는 일본에서는 2013년 방영돼 이미 시즌이 지나 자취를 감췄다. 올 시즌 상품인 ‘열차전대’는 내년 한국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타할아버지, 가브린초 공룡이 갖고 싶어요.”
홀로 치카치카를 정갈하게 마친 아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두 손까지 모았습니다. 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디지털콘텐츠팀의 정유경 기자입니다. ‘파워레인저’의 ‘다이노포스’(공룡 로봇)를 좋아하는 34개월 된 아들을 둔 덕택에 ‘친절한 기자들’을 쓰게 됐습니다.
‘크리스마스 장난감 대란’, 4~7살 남자아이들을 둔 가정에서는 지난해 이어 올해도 근심일 겁니다. 지난해엔 ‘또봇’ 시리즈 신상품인 ‘쿼트란’이었습니다. 올해는 더합니다. 파워레인저 다이노포스는 거의 전 품목이 품절입니다. 아들에게 잃은 점수를 만회하려는 아빠가 크리스마스 장난감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 <솔드아웃>(1996)을 생각하면 만국공통의 정서인가 봅니다.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파워레인저는 매년 테마를 바꾸는 일본의 ‘전대물’(여럿이 팀을 이뤄 악당을 물리치는 특수촬영물) 시리즈입니다. 1975년부터 일본 도에이사가 만들어온 텔레비전 드라마로, 색색깔 타이즈를 입은 용사들이 로봇을 조종하고 합체해서 지구를 침략한 나쁜 무리들을 무찌르는 얘깁니다. 1980년대 인기를 끈 ‘후레시맨’이 전대물 1세대라고 보면 됩니다. 2013년 파워레인저의 테마가 공룡이었습니다. 국내에선 올여름부터 방영됐습니다. 그렇잖아도 남자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하는데, 심지어 공룡들이 합체하는 변신로봇이라니…. 사촌 형들 틈에서 다이노포스를 본 아들은 엄마에게 박치기할 때는 ‘가브티라’(티라노사우루스 로봇)였고, 네 발로 뛰어올 때는 ‘스테고치’(스테고사우루스 로봇)였습니다. 그 전에도 파워레인저 시리즈인 ‘캡틴포스’(해적), ‘정글포스’(동물), ‘엔진포스’(자동차) 등을 사촌 형들과 봤지만, 이 정도로 좋아한 적은 없었습니다. 건담을 만든 반다이 사에서 파워레인저 완구를 만들어서 그런지, 로봇의 모양새도 제법 그럴싸합니다.
저렇게도 좋아하니, 사줘 볼까 생각했던 것이 추석 무렵이었습니다. 서울 용산에 있는 반다이 오프라인몰에선 다이노포스 완구류는 일찌감치 품절됐다고 했습니다. 11월 초 재입고된다더니, 순식간에 동났습니다. 항의가 빗발쳐 반다이코리아는 누리집에 ‘사과문’까지 내걸었습니다. 인기가 높은데 구하기 어려우니, 때를 노린 사재기업자들도 극성입니다. 정가 7만5000원인 티라노킹을 온라인에서 2~3배 가격에 팝니다.
그나마 정가에 구할 방도는 대형 마트입니다. 반다이코리아는 매달 일정한 수입 물량을 7 : 3 비율로 마트와 총판에 공급합니다. 하지만 수요에 비하면 턱없습니다. 마트 쪽도 “반다이코리아에 읍소 반 으름장 반으로 물량을 달라고 하는 판”이랍니다. 마트는 그렇게 확보한 물량으로 ‘크리스마스 완구 기획전’을 하는데, 사람이 엄청나게 몰립니다. 지난 16일 이마트에선 모바일 앱 고객에게만 500개 판매 행사를 했는데 4분만에 동이 났답니다. 저같은 엄마는 스마트폰에 이마트몰 앱을 깔고, 인증을 받고 에러가 나고 하다가 놓쳤습니다. 롯데마트는 구로점에서 18일 다이노포스 완구 180개(티라노킹 50개, 프테라킹 100개, 가브리볼버 30개)를 선착순으로 판매했습니다. 롯데마트의 완구담당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마트가 열기도 전인 아침 7시부터 그 추위에도 밖에서 줄을 서 있는 바람에 직원들이 따뜻한 커피부터 돌렸다. 번호표를 나눠줬는데 2분만에 동났다”고 말했습니다.
지친 엄마들은 아예 관세와 국제배송비를 물고 해외직배송으로 일본판을 구입합니다. 일본판은 우리말 음성이 나오지 않지만, 사재기업자에게 20만원 넘게 돈을 주고 사는 것보다는 가격이 저렴합니다. 그러나 이젠 일본에서도 이미 지난 시즌 물건이라 남아있는 재고도 사실상 품절 상태입니다. 일본에서는 2014년 시즌의 파워레인저인 ‘열차전대’ 완구가 현재 판매중이거든요. 지난 11월 말 일본 출장 중에 오다이바에 있는 완구몰 토이저러스를 들렀는데 재고가 없었습니다. 출장을 왔는지 양복 차림의 한 아빠가 한국말로 “여보! 여기 다이노포스 없대. 열차라도 사갈까?” 하고 로밍전화를 하고 있더군요. 하나 더 불길한 이야길 해드릴게요. 열차전대 로봇은 티라노킹보다도 더 비쌌습니다! 내년 국내 방영 때 이 정도로 히트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반다이코리아는 19일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타이에 있는 반다이사 완구공장에서는 일본판뿐 아니라 전세계에 나갈 완구 생산 계획을 연간 단위로 짜서 생산합니다. 음성 기능이 있는 로봇이기 때문에, 나라별로 다르게 만듭니다. 반다이코리아 완구팀에서는 “정확한 수량을 밝힐 수는 없지만, 예전 10년간의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보다 훨씬 많은 생산량을 한국판 방영 전에 정해둔 상태였다. 그런데도 워낙 수요가 폭발적이어서 따라잡을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에서도 2013년 다이노포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까닭에 역대 파워레인저보다 훨씬 생산량을 늘려잡았으나,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겁니다. 지난 시즌 파워레인저인 ‘고버스터즈’ 같은 경우는 잘 팔리지 않아서 아직도 악성재고가 남은 형편이거든요.
지금도 계속 생산하고 있고 내년에도 생산이 중단될 일은 없지만, 공급이 한정돼 있다보니 당분간 품귀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세계 판을 연간 단위로 기획해 생산하기 때문에 한국판이 인기를 끌었다고 갑자기 생산량을 몇 배로 늘릴 수는 없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증산해 줄 것을 그룹 본사에 요청했지만, 이만한 수요를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반다이코리아의 설명입니다.
이러니 폭리를 취하는 사재기업자들은 그저 배짱입니다. 4만원대의 가브리볼버는 12만원대에, 7만원대의 티라노킹은 20만원대에 판매하는데, 빗발치는 항의에도 “비싸도 살 사람은 산다”는 식입니다. 개인 ‘되팔이’마저 가세했습니다. 인터넷 중고매매 사이트인 ‘중고나라’ 같은 데서는 “뜯지도 않은 제품”이라며 정가에 수만원씩 웃돈을 붙여 내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줄 서서라도 마트에서 7만5000원짜리 티라노킹을 산 다음, 21만원에 팔면 꽤 쏠쏠한 장사가 되겠다 싶습니다. 이들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은 사지 못하는 까닭에 부모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34개월짜리 아들은 큰애들처럼 사달라거나 매일같이 마트에 가자고 조르진 않아 다행이지만, 틈만 나면 공룡 얘기를 합니다. 서점에 공룡을 다룬 책은 어찌 이리 많으며, 애들 옷에 공룡 그림도 어쩜 이리 많은가요. 멸종한 공룡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윤곽만 보고도 “엄마 이건 안킬로사우루스지?” 말하며 눈을 빛내는 아들을 보면, 어린이집에서 애들끼리 공룡의 학명을 토의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 웃음에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맞벌이 엄마 아빠들의 마음, 극성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도 마트에 줄을 서게 되는 이유 아닐까요.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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