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신청서에 서명시켜 5천만원 빚 떠넘겨
자동차 구매·핸드폰 개통 등 사기 잇따라
자동차 구매·핸드폰 개통 등 사기 잇따라
지난 2012년 3급 지적장애인인 임아무개(48)씨는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에서 미화원으로 근무하던 중 동료 직원에게 속아 대출신청서에 서명했다. 임씨는 휴대폰 명의도 도용당했다. 임씨에게 5000만원 상당의 빚을 남 남기고 도주한 동료 직원은 현재 지명수배 중이다. 채권자인 금융기관들이 임씨에게 빚을 갚으라고 독촉해왔고, 이 중 3개 금융기관이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임씨는 또 사용하지도 않은 휴대폰 요금을 청구 받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3급 지적장애인인 박아무개(41)씨는 지난 6월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받고 장애인 증명서류를 떼어다줬다. 돈을 준다기에 한 행동이었다. 이후 박씨 명의로 자동차가 구매됐고 신용카드가 만들어졌다. 관련 서류에 박씨 본인이 서명하지 않았지만, 장애인 증명서류 한 장을 내준 것만으로 자동차 할부 대금 고지서가 매달 박씨에게 날아오고 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임씨의 피해사례와 관련해 우리카드, 케이비저축은행, 아프로파이낸셜대부, 엘지유플러스 등 10개 금융사, 대부업체와 통신사를 상대로 지난 18일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고 23일 밝혔다. 소송 대리인인 유창진 변호사는 “지급명령에 이의신청을 하면 정식재판이 열리는데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가서 서명한 거 맞지 않느냐’는 식으로 진행돼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유 변호사는 “지적장애인이 ‘의사무능력자’로 인정돼 계약자체가 무효가된 판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이 같은 장애인 상대 사기·갈취 상담만 2014년 한 해 동안 전체 상담의 11%, 705건을 접수했다고 한다. 연구소는 “많은 지적장애인들이 대출, 신용카드 발급, 휴대폰 개통 등에서 악의적 피해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제2금융권에서는 간단한 본인 확인 절차만으로도 대출해주기 때문에 장애인의 명의를 도용해 휴대폰을 개통하고 그 휴대폰으로 확인 전화를 받는 방식으로 손쉽게 대출이 이뤄져 제2금융권 대출을 통한 피해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지적장애인들은 ‘고마워’라는 말을 듣거나 돕는 행위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래서 돕는다는 생각으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계약의 의미, 도장을 찍는다는 것의 의미 등 발달장애인들이 자기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기옹호교육을 지역 복지관, 장애인단체 등에서 더욱 강화·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