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8일 오후 알파잠수기술공사의 다이빙벨이 사고 해역에 투입되기에 앞서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점검을 받고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유족과의 면담 자리에서 다이빙벨 투입을 약속했다. 진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잠수보조장비 ‘다이빙벨’은 세월호 사고 구조작업 내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존자를 살려내는 마지막 희망으로 떠올랐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친 희망으로 혹세무민하는 고철 덩어리로 여겨졌습니다. 과도한 옹호와 과도한 비난. 두 가지 시각이 갈수록 극단화되면서, 다이빙벨은 갖가지 정치적 입장과 음모론, 믿음과 폄훼, 열정과 냉소가 뒤범벅된 전쟁터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때 우리는 다이빙벨을 차분하게 바라봤을까요?
지난 16일 낮 12시30분, 서울 광화문의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했다. 두툼한 파카를 입은 10대 넷이 일찌감치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40대 아주머니 서넛, 30대 커플 등 관객은 모두 17명이었다. “국내외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소개하는 영화 전단지에서 몇 개의 단어가 눈에 띄었다. 타락, 역사, 무능과 공모, 진실 그리고 힘.
타락-“이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역사-“역사의 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경이로움”, 무능과 공모-“정부의 무능함과 미디어의 공모를 비판하고”, 진실-“배와 함께 침몰해가는 진실을 붙잡기 위해”, 힘-“다이빙벨과 같은 영화에 우리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이빙벨>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잠수장비인 다이빙벨을 둘러싼 논란을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했다. 카메라는 이상호 기자의 발걸음을 따라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세 번에 걸친 다이빙벨 투입 시도에 대한 정부의 방해와 직무유기 의혹을 제기한다.
지난 23일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면, 10월 개봉 이후 4만7652명이 이 영화를 봤다. 상업영화와 별도로 순위를 매기는 다양성 영화 부문에서 개봉 이후 줄곧 10위권을 유지했다. 이 영화는 스크린 밖에서 더 큰 관심을 불렀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시가 <다이빙벨>의 상영 취소를 요구했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조선일보>는 지난달 20일 ‘다이빙벨 거짓말 계속하며 고3에게 영화보라 선동하는 이상호씨’라는 기사에서 영화를 거짓 선동이라고 비난했다. 지난달 19일 시민단체는 이 영화의 상영을 꺼린다며 멀티플렉스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이빙벨(잠수종)은 알렉산더 대왕이 이용하는 그림이 그려질 정도로 유서 깊은 잠수장비다. 고도의 공학적 설계가 필요한 장비가 아니다. 물 위에서 바가지를 엎으면 상층부에는 대기가 남는 원리를 이용한다. 잠수사들이 수중 탐색 중 다이빙벨에 들어와 맨얼굴로 지상에서 공급되는 공기를 내쉬면서 쉴 수 있다.
과도한 기대와 폄훼, 위악적 인터뷰
세월호 구조 작업은 악천후와 거센 조류로 중단되기 일쑤였다. <고발뉴스>와 <팩트티브이> 등 시민저널리즘을 중심으로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다이빙벨 투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다이빙벨은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을 꺼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4월24일 밤은 희망의 절정을 이룬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이 유가족들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유가족들은 구조 지체에 대해 거세게 항의를 하면서 다이빙벨 투입을 요구하고, 이상호 기자는 이종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대화를 이어준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이 대표에게 “모든 역량과 힘을 합쳐서 수습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주시라고 부탁을 드립니다”라며 다이빙벨 투입을 요청한다. “원하는 대로 제가 가진 거 해서 이번 일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하면서 이 대표는 수락한다. “빨리 와주세요” 유가족들이 박수를 친다. 이 드라마틱한 장면은 인터넷 매체와 유튜브 동영상으로 중계된다. 공개적인 정부 허가로 다이빙벨이 생존자 구조에 나서게 된 것이다.
다이빙벨 작업은 그러나 앞선 시도(4월21일 다이빙벨이 사고 해역에 갔으나 해경은 거부했다)와 마찬가지로 순탄치 않았다. 4월25일 다이빙벨을 태운 바지선은 사고 해역에 도착해 구조를 총괄하는 바지선에 고정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4월30일 바지선을 고정하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 이날 오후 수중에 투입됐지만 지상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공기줄(에어호스)에 문제가 생기면서 20여분 만에 물 위로 나온다. 5월1일 새벽 3시20분에 다시 투입된 다이빙벨에서 잠수사 세 명은 선체에 접근해 장애가 되는 로프 등을 제거하고 새벽 5시 넘어서 지상에 올라온다. 발견된 실종자는 없었다. 잠수사들은 2차 다이빙을 위해 휴식에 들어갔다. 기자들은 자리를 떴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날 오전 언론에 ‘다이빙벨 자진철수’라는 자막이 뜨기 시작한다. 이 대표는 팽목항으로 귀환한다. 이 대표는 일주일 전 유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정부 관료들처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책당한다. 동영상으로 기록된 인터뷰 중 일부를 인용한다.
기자: 잠수부들이 50분 동안 수색하고 활동을 했어요. 그래서 선내도 들어갔다고 하셨는데, 현재 와서 실패라고 하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 가정을 하는 겁니까?
이종인: 이 작업 자체가 실종자를 수색해서 모시고 나오는 것이잖아요. 다이빙벨을 쓰든 뭐를 쓰든. 그 결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건 실패죠.
……
기자: 그런데도 무리하게 다이빙벨을 들고 오셨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이종인: 제 장비를 써봤으니까.
기자: 단지 그것뿐입니까?
이종인: 써봤으니까. 그 조류에도 할 수 있는 거는 나한테는 증명이 된 거 아니에요.
기자: 그러면 공을 빼앗는 것을 떠나서, 다시 할 수 있다면 도전할 겁니까?
이종인: 다시 도전을 하면, 제가 이렇게 이런 취급을 받고 가족들에게 야단을 맞고 이렇게 할 리가 없죠.
기자: 지금도 다이빙벨이 구조작업에서 가장 월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이종인: 그래서, 이거 빌려쓰려면 쓰라고 했어요. 그냥 장비니까.
……
기자: 세월호 밑에서 기다리던 실종자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하실 말씀 있으면 해보시죠.
이종인: 죄송합니다.
기자: 왜 죄송하시죠?
이종인: 구한다고 와서 못 구하고 가서… 그게 어떤 이유가 됐든 그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예요.
기자: 못 구한다기보다는 안 구하신 거죠.
이종인: 못 구했죠.
기자: 처음부터 구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진심으로 얘기해주세요.
이종인: 네, 진심으로.
절박함에서 비롯된 기대 그리고 실망. 이들이 주고받은 대화는 기자와 취재원이라는 관계에 견줘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다이빙벨은 이후 ‘실패’, ‘자진철수’ 등의 수식어와 함께 등장했다. 보수언론은 다이빙벨과 이 대표에 대한 ‘융단폭격’을 시작했다. 열기가 가라앉은 즈음의 어느 날, 이종인 대표를 직접 만나 물었다.
“위악적으로 대답한 측면이 있었죠?”
“그래. (해경이 구조작업에) 협조적이었냐 (물으면 나는), 아주 협조적이었습니다, 그랬지.”
“약간 반어적으로?”
“그래. 반어적으로.”
이종인 대표는 자신의 다이빙벨을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사고 해역에 가져갔고 한번의 투입 뒤에 ‘자진철수’했다는 비판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해군의 요청을 받고 사고 해역에서 철수했으며, 팽목항에 도착해서는 유가족들로부터 실종자 수습에 실패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5월1일) 1차 다이빙 끝내고 2차 다이빙을 준비하고 있을 때야. 잠수사가 없으니까 몸 안에 잔류 질소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 오전 10시께 (바지선 위의) 컨테이너에 누워 있는데 누가 찾아왔대. 해군 소장이 와 있더라고. 그러더니 ‘배 좀 빼주셔야 하겠네요, 우리 작업해야 하니까’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렇잖아도 내가 뺄라고 그랬다. 알았다’고.”
철수 요청을 한 해군 소장은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서 탐색구조단장을 맡은 김판규 해군 인사참모부장이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김판규 소장은 이런 사실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24일 답변서를 보내왔다. 김 소장은 “알파잠수 작업실에서 이종인씨에게 향후 추가 작업 계획에 대해 문의했었고 곧 철수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이에 “김 소장이 먼저 문의하지 않았다. 그게 대화의 전부였다”며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다이빙벨이 편치 않았다
천신만고 끝 사고해역 투입됐지만
해경 경비정은 와서 부딪혔고
생명줄 ‘에어호스’는 찢어졌다
거대한 음모인가, 괜한 의심인가 바다는 다이빙벨한테도 공평하다
안에 있어도 감압 시간 줄지 않아
잠수사 부족해 계속 투입 못했지만
보수언론이 ‘사기꾼’ 딱지 붙이니
과도한 ‘정의의 투사’ 되어버렸다 에어호스는 왜 파손됐나 다이빙벨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다이빙벨 투입 과정에서 해경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는가. 둘째, 다이빙벨은 세월호 구조 현장에 꼭 투입해야 했던 장비였는가. 첫째 쟁점에 관해 영화 <다이빙벨>은 해경의 조직적인 방해 의혹에 무게를 싣는다. 작업 중인 다이빙벨 작업 바지선에 해경 경비정이 접안하면서 부딪힌 사건, 다이빙벨 작업 도중 잠수사의 에어호스가 파손된 점, 김판규 해군 소장의 최종 철수 요청 등을 보여주면서 조직적인 방해가 있음을 암시한다. 정부는 다이빙벨 작업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비정 충돌 사건에 대해서 해경 관계자는 당시 브리핑에서 “우리가 주의했어야 하는 건 사실”이라며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에 대해선 부인했다. 에어호스 파손은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잠수사들이 수중에서 산소를 공급받는 거의 유일한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파손 사고 당시 한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풍랑 때문에 밀려서 끼여 (파손되어) 나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반대로 제3자에 의한 인위적인 파손 가능성을 제기했다. 에어호스에 대해 이 대표에게 물었다. “그건 미스터리야.” “예전에 인터뷰 때 하신 말씀은….” “거기선 그렇게 얘기했지. (전국민적 구조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근데 와이어에 씹혀서는 그렇게 되질 않아. 누가 엿먹인 거지. 호스가 씹혔다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잖아. 이 호스의 사용압력이 120㎏이야.”
당시 해경과 구조팀이 ‘다이빙벨 작업’을 반기지 않았음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수색 작업의 더딘 속도에 대해 전국민적인 비판이 쏟아졌고, 일부에선 그 원인을 다이빙벨의 부재로 투사하고 있었다. 당시 범정부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급박하게 이뤄지는 수색 작업에 지장을 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일부 가족들도 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다이빙벨 작업을 방해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르다. 영화 <다이빙벨>도 음모의 기반을 나타내주는 증거는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성상민 평론가는 이 영화를 “주장이 근거가 되는 순환논증에 빠진 문제적 다큐”라고 규정하면서 “시종일관 두 사람의 입을 통해 다이빙벨의 가능성과 실패한 것에 대한 음모론을 말하지만, 정말 입으로 말하는 것에 그칠 뿐 심층적인 분석과 입증을 하지 않는다”(<미디어스> 10월17일)고 비판한다.
둘째, 과연 다이빙벨이 세월호 구조에 필수적 장비였는지, 정규 투입됐다면 성과를 얻었을지 여부다. 세월호 구조 작업에선 ‘스쿠버 잠수’와 ‘표면호흡식 잠수’ 등 두 가지 잠수 방식이 사용됐다. 스쿠버 잠수는 잠수사가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는 방식이고, 표면호흡식은 지상의 바지선에서 에어호스를 통해 잠수사에게 산소를 공급한다. 다이빙벨 등 잠수사들이 물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치는 애초부터 고려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이 대표의 다이빙벨 투입을 ‘실패’라고 단정했지만, 해경에서 장비기술을 담당했던 고명석 당시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대변인(현 국민안전처 대변인)조차도 23일 그런 단정에 반대했다.
“실패냐 성공이냐는 판단하기 곤란하죠. (잠수부가 교체 투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기간을 두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바다는 주는 만큼 받아간다. 바닷속에서 오래 머물수록 잠수사는 육지에 올라와 오래 쉬어야 한다. 잠수 중에 쌓이는 몸 안의 질소를 빼내기 위해서다. 지상에 오른 잠수사는 잠수 시간에 따라 ‘감압체임버’에 들어가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맨몸으로 가이드라인(지상의 바지선과 수중의 세월호 선체를 연결한 로프)을 잡고 규정된 수심에서 여러 차례 머물면서 ‘아주 천천히’ 수면 위로 상승해야 한다.
다이빙벨은 이 과정에서 효율적인 감압이나 작업 도중 휴식 목적으로 설치될 수 있다. 다이빙벨에 머문다고 해서 감압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생존자도 감압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서 생존자가 발견될 경우, 2인1조의 구조팀이 내려가 생존자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운 뒤 데리고 올라와 지상의 감압체임버에 넣는 방식을 계획했었다. 결국 핵심은 잠수사를 효율적으로 빠르게 교체함으로써 작업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이 대표가 투입한 다이빙벨은 두 시간 남짓 임무를 마치고 지상으로 올라와야만 했다. 이유는 수중에서 ‘바통 터치’를 해줄 잠수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의 효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렸다. 그러나 구조 실패의 원인을 ‘다이빙벨의 부재’로 환원하는 이는 없었다. ‘다이빙벨의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종인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물속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조류와 추위입니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건 다이빙벨밖에 없습니다. 피로가 없으니까 잠수사에게 안전합니다.”
반면 심경보 동부산대 해양산업잠수과 교수는 22일 “바닷속에서 최소한의 감압만 하고 지상에 올라와 감압하는 게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좋은 다이빙벨이 복수 투입된다면요?” “없는 것보다 낫겠지만, (여러 대를 동시 운영하려면) 시야도 잘 나오고 조류도 미미해야 해요.”
소통부재와 불신을 투영하는 전장으로
애초에 복수의 다이빙벨과 이를 체계적으로 배치하는 역량, 본질적으로는 크루즈급 선박이 침몰하는 와중에 구조작전을 효율적으로 전개할 인력, 장비, 전략은 부족했다. 해군 소유의 다이빙벨은 심해용이라면서 정부는 투입에 부정적이었다. 고명석 당시 대변인이 말했다.
“하루에도 희생자가 30여명 넘게 수습되고, 정돈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사실 다이빙벨 세팅하고 그럴 여유 없었습니다. 설치하고 조류 맞추다 보면 며칠 흘러갈지도 모르죠. 살아 있는 사람 있으면 빨리 구하자, 맨몸으로라도 스쿠버 잠수 빨리 보내야지, 그런 생각밖에 없었죠.”
200여명의 아이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는 이 거대한 재난의 가시화되지 않은 주범을 찾아 헤매야만 했다. 유가족들도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와 제도권 언론 등 주류 체제에서 외면받으면서, 동시에 세월호 사고를 잉태한 그런 주류에 대한 불신이 팽창하면서, 다이빙벨은 ‘거짓의 체제’를 깨뜨리고 ‘진실의 문’을 여는 열쇠로 떠올랐다. 과도하게 옹호하거나 폄훼하는 입장으로 양극화됐고, 이른바 ‘다이빙벨론자’들은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로 추앙받거나 반대로 사기꾼으로 폄하됐다. 다이빙벨이 점차 세월호 구조 실패의 한 상징물을 넘어서 정부와 국민, 진영 간의 소통 부재와 불신, 여론의 양극화 등 우리 사회를 투영하는 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자신의 다이빙벨 앞에 서 있는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 사진 알파잠수기술공사 제공
천신만고 끝 사고해역 투입됐지만
해경 경비정은 와서 부딪혔고
생명줄 ‘에어호스’는 찢어졌다
거대한 음모인가, 괜한 의심인가 바다는 다이빙벨한테도 공평하다
안에 있어도 감압 시간 줄지 않아
잠수사 부족해 계속 투입 못했지만
보수언론이 ‘사기꾼’ 딱지 붙이니
과도한 ‘정의의 투사’ 되어버렸다 에어호스는 왜 파손됐나 다이빙벨에 대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다이빙벨 투입 과정에서 해경의 조직적인 방해가 있었는가. 둘째, 다이빙벨은 세월호 구조 현장에 꼭 투입해야 했던 장비였는가. 첫째 쟁점에 관해 영화 <다이빙벨>은 해경의 조직적인 방해 의혹에 무게를 싣는다. 작업 중인 다이빙벨 작업 바지선에 해경 경비정이 접안하면서 부딪힌 사건, 다이빙벨 작업 도중 잠수사의 에어호스가 파손된 점, 김판규 해군 소장의 최종 철수 요청 등을 보여주면서 조직적인 방해가 있음을 암시한다. 정부는 다이빙벨 작업을 방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비정 충돌 사건에 대해서 해경 관계자는 당시 브리핑에서 “우리가 주의했어야 하는 건 사실”이라며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에 대해선 부인했다. 에어호스 파손은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잠수사들이 수중에서 산소를 공급받는 거의 유일한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파손 사고 당시 한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풍랑 때문에 밀려서 끼여 (파손되어) 나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반대로 제3자에 의한 인위적인 파손 가능성을 제기했다. 에어호스에 대해 이 대표에게 물었다. “그건 미스터리야.” “예전에 인터뷰 때 하신 말씀은….” “거기선 그렇게 얘기했지. (전국민적 구조 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고. 근데 와이어에 씹혀서는 그렇게 되질 않아. 누가 엿먹인 거지. 호스가 씹혔다면 (어느 정도) 남아 있어야잖아. 이 호스의 사용압력이 120㎏이야.”
세월호 참사를 담은 첫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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