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013년 9월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통상임금 범위 상고심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입법 발의된 상고법원 도입
지난달 19일 입법 발의된 상고법원 도입 법안의 핵심을 보면, 3심 재판 절차가 복잡해진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3심 재판을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나눠 맡고, 경우에 따라서는 3심 뒤 한 차례 더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
■ “내 사건은 대법원 왜 못 가나” 불만?
대법원이 추진 중인 상고법원 안을 보면,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을 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에서 심사해 일부는 대법원이 직접 재판하고 일부는 상고법원으로 보낸다. 대법원이 맡는 사건은 △사형·무기징역 선고 사건 △당선무효 사건 △군사법원 사건, 주민투표소송 등 헌법·법률이 대법원에서 재판하도록 정한 사건 △법령 해석 통일에 관련된 사건 △공적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 △그밖에 대법원이 심판하는 것이 타당한 사건이다. 그외의 사건은 상고법원으로 보내진다.
우선 ‘공적 이익’이나 ‘상당한 사건’은 기준이 모호해, 사건 당사자들이 분류 단계에서부터 불만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도읍 의원(새누리당)은 “결국 소액 절도·사기 등 서민들 사건은 상고법원이 맡고, 금액이 많거나 힘 있는 사람은 대법원에서 재판받는 불평등이 생길 텐데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서기호 의원(정의당)도 “소송 당사자들이 대법원에서 재판받기 위해 대법관 출신 등 전관 변호사들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그에 따라 변호사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도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 소송지체·비용증가 우려도
법안을 보면, 상고법원 재판부에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재판부 판단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될 때는 심사하던 사건을 대법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상고법원이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판결을 못 하도록 금지한 셈이다. 대법원은 상고법원 판사들을 법원장 출신 등 대법관과 비슷한 경력을 가진 이들로 구성하고, 일부는 외부에 문호를 개방할 계획이다. 이런 계획대로라면, 상고법원은 오랜 경륜을 지닌 법관들이 재판을 맡지만 대법원 판례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다. 대법원의 ‘하청 법원’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법과 상고법원의 재판 분리안
기준 모호해 “소송 불평등” 우려 일부사건 4심제 될 가능성 대법관 1인당 한 해 3000건 처리
상고허가제 등 다른 대안도 검토를 상고법원 판결이 헌법·법률에 위반되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르면 대법원에 특별상고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4심제가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10월 연 토론회에서 김석우 법무부 검찰제도개선기획단장은 “무수히 많은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지 한 가지 의미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결국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는 이유로 제2의 상고가 상당 부분 허용되고, 이는 4심으로 이어져 사법 비용이 증가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특별상고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고, 현재보다 많은 인력이 상고심 재판에 투입돼 신속하고 충실한 재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판사직 수요가 늘어나고, 고위직 법관들의 ‘자리’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 “1·2심 승복해 대법원 안 가는 게 옳은 방향”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추진하는 가장 큰 배경은 사건 증가다. 하지만 이를 두고서는 특별히 상고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소송 자체가 증가한 결과라는 시각이 많다. 소송 증가 이유로는 작은 다툼도 소송으로 해결하려는 경향, 경제 발전에 따른 분쟁 증가, 변호사 수 증가 등이 꼽힌다.
대법원은 무조건 삼세판까지 간다는 시민들의 ‘법감정’ 때문에 상고사건이 줄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재판 결과가 바뀔 확률이 5%대로 낮은 점을 고려하면, 단지 ‘무조건 삼세번’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상고를 남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장주영 변호사는 “상소하는 이유는 재판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대한 불신도 있다. 대법원이 재판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상소 사건은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민식 의원(새누리당)은 “1·2심 재판의 질이 국민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는 상태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 대뜸 상고법원을 설치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을 의식해 대법원은 판사 1명이 단독재판부의 절반을 4년 안에 경력 15년차 이상 부장판사급으로 채우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하급심 충실화 방안을 최근 내놓기도 했다.
■ 대안은 뭐가 있나?
국회나 법조계도 상고심 폭증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미국 등지에서는 대법원이 허락하는 사건만 3심 재판을 하는 상고허가제가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잠시(1981~90년) 시행됐다가 재판받을 기회를 제한한다는 비판에 따라 폐지됐다.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2005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각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입법화되지 못했다. 상고법원 도입 법안을 발의한 홍일표 의원(새누리당)은 “일단 상고를 다 받아주고 처리 방식만 다르게 하는 상고법원 도입이 국민들 입장에서는 친절한 제도”라고 말했다. 상고심 폭증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국민의 ‘법감정’을 어느 정도 충족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뜻이다. 임내현 의원(새정치민주연합)도 “상고법원에 신뢰를 높이는 제도가 병행된다면 시행해볼 만하다”고 평했다.
대법원이 극력 반대하지만 대법관 증원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한변협이 최근 소속 회원 15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상고심 개선 방안으로 대법관 증원을 택한 응답자가 51%였다. 상고법원 신설에 대한 찬성 의견은 34%였다.
상고법원 설치에 ‘올인’하는 대신 상고사건 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최근에는 벌금형 약식명령 사건 당사자가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약식명령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한 법조항을 폐지해 약식명령 사건의 상고 남발을 막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약식사건 상고는 전체 형사사건 상고 건수의 30%가량을 차지한다. 재판 대신 조정을 활성화하도록 조정법원을 설치하는 방안도 나온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기준 모호해 “소송 불평등” 우려 일부사건 4심제 될 가능성 대법관 1인당 한 해 3000건 처리
상고허가제 등 다른 대안도 검토를 상고법원 판결이 헌법·법률에 위반되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다르면 대법원에 특별상고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4심제가 될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10월 연 토론회에서 김석우 법무부 검찰제도개선기획단장은 “무수히 많은 대법원 판례에 배치되는지 한 가지 의미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결국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는 이유로 제2의 상고가 상당 부분 허용되고, 이는 4심으로 이어져 사법 비용이 증가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특별상고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고, 현재보다 많은 인력이 상고심 재판에 투입돼 신속하고 충실한 재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판사직 수요가 늘어나고, 고위직 법관들의 ‘자리’도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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