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위상 확대에 위기감 작용
‘정책법원’으로 영향력 확대 의도
개헌론 앞서 논의 선점용 일수도
독일선 분야별로 대법원 구성
‘정책법원’으로 영향력 확대 의도
개헌론 앞서 논의 선점용 일수도
독일선 분야별로 대법원 구성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최고재판소 지위를 둘러싼 헌법재판소와의 경쟁의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이라고 규정했지만 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 심판 등의 기능은 이듬해 설립된 헌법재판소에 맡겼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위헌 소송 등을 거치며 헌재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대법원의 위기의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두 기관은 ‘법조문을 ~라고 해석해 적용하면 위헌’이라는 한정위헌 결정을 두고도 오랜 다툼을 벌이는 등 긴장관계에 있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률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기능을 뛰어넘어 한정위헌이라는 변형결정으로 법원의 고유 권한인 법률해석권을 침범하는 것은 ‘반칙’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과 헌재의 불편한 동거는 한국 사법체계의 독특한 현상이다. 서로 다른 미국식·독일식 모델을 섞어놨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따로 없는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법률의 위헌심사까지 맡고 있다. 연방대법관 9명은 상고허가제를 통해 사건을 선별해 다룬다. 명실공히 ‘정책법원’이기도 하다. 미국은 주별로도 대법원이 따로 있고, 연방대법원은 연방헌법·법률 관련 사건만 다루기 때문에 전체 접수 사건은 한 해 8800여건(2012년)에 불과하고, 심층적으로 다루는 사건은 연간 100건 안팎이다. 연방대법원은 최고법원으로서의 위상이 확고하다.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최고법원이다. 연방헌재는 한국 헌재처럼 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 심판 등의 기능이 있는데다 법원 판결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권한(재판소원)도 갖고 있어 권한이 크다. 연방대법원은 일반·행정·재정·노동·사회 등 분야별로 나눠져 있다.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일반대법원(연방일반법원)에서는 대법관 128명이 3심 재판을 담당한다.
한국은 대법원을 최고법원이라고 하면서도 헌재가 따로 있어 애매한 상황이 돼 있다. 한 고위 법관은 “(1988년) 헌재가 만들어질 때 위헌법률 심사나 탄핵 심판이 이렇게 중요하게 될지를 모르고 대법원도 별다른 반대를 안 했다. 지금에 와서야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독일처럼 대법관 수를 대폭 늘려 권리구제(일반사건 담당) 기능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대법원은 “대법관이 늘어나면 전원합의체 기능이 약화된다”며 반대한다.
고위직 법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대법관 증원 등) 개헌 얘기가 나오니 대법원이 선제적으로 상고법원 안을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 헌재가 재판 결과도 심판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등 권한 확대 움직임을 보이자 대법원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이런 틀에서 보면, 상고법원 신설은 ‘꿩’(일반사건 3심·독일식)도 먹고 ‘알’(최고법원으로서 존재감·미국식)도 먹고 싶어하는 대법원이 찾아낸 묘수일 수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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