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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작전 성공했다’는 인질극…경찰 뭇매 맞는 이유 뜯어보니

등록 2015-01-14 14:07수정 2015-01-14 16:58

[뉴스 AS] 경찰 작전의 전말
집안 내부 상황 파악 못한 탓에 ‘작전 골든타임’ 놓쳐
엠바고 안 걸어 인질극 TV 생중계 되는 ‘촌극’ 벌어져
경기청장은 의례적 행사 가느라 현장에 뒤늦게 도착
경찰이 경기 안산 도심 주택가에서 벌어진 한낮 인질 사건에 대한 ‘미숙한 대응’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경찰은 ‘사로잡힌 인질의 목숨을 모두 구한 만큼 성공한 작전’이라고 자평하고 있으나, 사건 초기 현장을 장악하지 못했고 ‘작전 골든타임’을 놓쳐 10대 소녀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인질 구출 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해야 할 책임자인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인질극 발생 보고를 받고도 행사 참석을 이유로 뒤늦게 현장에 나타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지난 13일 오전 9시33분~36분 경찰 112상황실에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재혼한 남편 김아무개(47)씨가 전 남편 박아무개(49)씨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다세대주택에서 두 딸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신고자는 김아무개(44·여)씨였다. 인질로 잡혔다고 밝힌 두 딸은 신고한 김씨와 전 남편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앞서 부인 김씨는 이날 오전 9시20~29분 인질로 잡힌 큰딸(17)과 통화한 데 이어 9시32분께에는 인질범인 남편 김씨와 30여초 동안 통화하면서 인질극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 부인 김씨가 전화를 받지 않자 인질범은 극도로 흥분했고, 이 과정에서 작은 딸(16)에게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힌 뒤 살해했다.

이때까지도 경찰은 내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사건 전날인 지난 12일 오후 9시께 이미 인질범 김씨가 집주인 박씨를 살해하고 두 딸과 박씨의 지인인 여성 1명까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임에도 경찰은 ‘신고자의 두 딸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만 알았다. 물론 박씨가 숨진 사실도 몰랐다.

이날 오전부터 인질범과 경찰의 협상과 대치는 계속됐고, 인질범 김씨는 오후들어 ‘자수하겠다. 오전부터 통화한 형사를 집으로 보내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형사가 집으로 올라오자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인질이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경찰은 5시간 만인 오후 2시30분께 경찰특공대를 집 안으로 투입했다. 김씨는 바로 검거됐지만, 집 안에서는 숨진 박씨와 피를 흘리고 쓰러진 작은딸이 발견됐다.

경찰특공대원들이 13일 오후 인질극이 발생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주택으로 진입하고 있다. 2015.1.13 / 연합뉴스(연합뉴스TV 캡처)
경찰특공대원들이 13일 오후 인질극이 발생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주택으로 진입하고 있다. 2015.1.13 / 연합뉴스(연합뉴스TV 캡처)
경찰은 사건 직후인 13일 오후 6시 브리핑에서는 작은딸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오후 2시40분께 ‘과다 출혈’로 숨졌다고 밝혔다. 내부 상황을 확실히 파악하고 신속한 작전을 펼쳤더라면, 10대 소녀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작전 골든 타임’을 놓쳐다는 비판이 일자, 경찰은 14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숨진 소녀는 작전이 시작되기 전 이미 인질범에 의해 살해됐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의 협상이나 작전과 무관하게 인질범이 소녀를 흉기로 찌르고 입과 코를 막아 살해했다는 것이다. 소녀의 죽음이 ‘비구폐색(코와 입이 동시에 막혀 사망하는 것)에 의한 질식사’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를 그 근거로 내놨다.

하지만, 경찰의 이런 해명에도 비판은 여전하다. 인질범이 사건 당일 낮 12시45분께 영상통화로 자신이 흉기를 휘둘러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작은딸의 모습을 3초 동안 부인 김씨에게 보여줬던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숨진 박씨의 지인과 큰딸(17)을 보호하기 위해 협상을 계속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내부 정황 파악이 어두워 신속한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15분께 서울경찰청에 경찰특공대 지원을 요청해, 특공대는 30여분 뒤 현장 건물 옥상 등을 접수하고 ‘작전 개시 명령’을 기다렸지만, 2시30분까지 계속 대기만 했다.

특히 유괴 사건이나 인질 사건의 경우, 경찰은 통상 범인을 자극해 우발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언론에 ‘엠바고(보도 자제)’를 요청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일부 언론이 인질극 현장을 생중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한 경찰은 사건 발생 2시간30분이 지나서야 출입기자들에게 급하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용의자가 감금 장소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어 흥분할 수 있으니 실시간 중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와 관련해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상황이 너무 긴박하게 돌아가 미처 조처를 하지 못하다 나중에 보도자제 요청을 해 방송사에서 이를 들어줬다”고 해명했다.

상식적으로 인질 구출 현장을 총지휘해야 할 김종양 경기지방경찰청장의 안이한 대처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청장은 인명 피해가 예상되는 인질극이 벌어졌지만 남양주경찰서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석하느라 3시간여 뒤에야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김 청장은 사건이 접수된 지 20여분 뒤인 오전 9시55분께 인질극 상황을 보고받고도 ‘9시10분께 남양주경찰서 행사 참석을 위해 떠난 상황’이란 이유로 차를 돌리지 않았다. 이날 남양주경찰서에서는 김 청장의 ‘치안 현장 방문’ 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행사를 마친 김 청장은 낮 12시께 남양주시에서의 점심 일정을 취소하고 오후 안산 인질극 현장으로 갔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소속 특공대가 없어 서울경찰청에서 특공대를 지원받았다.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인질극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지방경찰청장은 당연히 현장을 지휘하고 특공대 투입 시점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 김 청장은 의례적인 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사건을 가볍게 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경기경찰청은 “청장은 현장에 반드시 나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총괄 지휘는 경기경찰청 형사과장이나 안산상록서장이 해도 된다. 그럼에도 청장은 유선상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특공대를 요청하도록 지시하는 등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미숙한 인질극 대응 논란에 대해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통상 인질극에서 특공대가 투입될 경우 인질이 숨지거나 다치지 않고 작전을 성공할 확률은 80% 정도인데, 특공대 투입 이후 사상자가 없는 만큼 이번 작전은 100% 성공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질극에서 작전 개시는 특공대가 인질범을 제압하기 위해 투입되는 순간부터임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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