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때 북한 포로 된 한만택씨
2004년 탈북했다 잡혀 북송뒤 숨져
재판부, 정부 보호조처 부실 지적
가족의 진정 접수하고도 소극대처
“구금장소 방문하거나 연락 안취해”
2004년 탈북했다 잡혀 북송뒤 숨져
재판부, 정부 보호조처 부실 지적
가족의 진정 접수하고도 소극대처
“구금장소 방문하거나 연락 안취해”
국군포로 귀환을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국가에 물은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부(재판장 홍동기)는 2004년 탈북했다가 강제 북송된 국군포로 고 한만택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억원을 지급하라고 15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무원들이 한씨의 국내 송환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불법행위에 대해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씨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7월 스무살 나이에 입대했다.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지만 휴전 직전인 이듬해 6월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실종됐다. 전사했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국립현충원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왔다.
하지만 한씨는 북한군에 포로로 잡힌 뒤 함경북도 무산에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다. 그는 2004년 11월 중국에 있는 며느리를 통해 남쪽의 형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가족들은 정부에 송환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2004년 12월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 앞으로 “한국전쟁 당시 전사 처리된 한씨가 북한에 살아 있는 사실을 확인했고, 가까운 시일 안에 중국에서 가족과 상봉할 예정이며, 국내 귀환 의사도 확인됐으니 사전 조처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진정서를 보낸 것이다.
한씨와 가족들은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길림성 연길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한씨는 그해 12월27일 밤 두만강을 건너 연길에 도착해 전화로 탈북 성공을 알렸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가족들은 인천공항에서 체포 사실을 들었다.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국방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에게 ‘한씨가 연길시 공안국에 잡혀 있고 북송되면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보냈다. 주중 한국대사관 ㄱ영사에게도 전화해 체포 사실과 구금 장소, 중국 공안 담당자 연락처를 알려주고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영사는 한씨를 방문하거나 중국 공안에 연락하지 않았다.
ㄱ영사는 이듬해 1월26일 한씨 가족에게 “2004년 12월30일 이전에 이미 북송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씨는 이듬해 2~3월께 남쪽 가족과 통화하면서 그해 1월6일 북송됐다고 얘기했다. 북송돼서는 고문과 가택연금을 당했다고 했다. 한씨는 그해 4월 다시 탈북하려다 들켜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 한씨의 여동생과 조카 부부는 그가 2009년 9월 77살을 일기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2012년에 듣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염원했던 한씨의 귀환과 가족 상봉이 무산됐다. 국가가 중대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가족들의 진정서를 접수하고 9일이 지나서야 외교부에 알렸고, 외교부는 구금 장소와 중국의 담당 공안기관을 알았는데도 방문하거나 연락을 취하지 않고 강제북송 날짜도 잘못 알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두 기관이 국군 포로 보호를 위해 지체 없이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할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재판에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씨의 국내 송환에 실패한 2004년부터 5년이 지난 2009년 소멸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족들은 한씨가 북한에 살아 있을 것으로 기대해 재송환을 계획하다가 2012년 사망 소식을 들었다”며 “한씨의 사망이 확인될 때까지는 국가를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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