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긍 세명대 교수 논문서
“반야월 유행가로 전설화돼”
시 상징 캐릭터 문제점 지적
“반야월 유행가로 전설화돼”
시 상징 캐릭터 문제점 지적
충북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 사이에는 박달재(504m) 고개가 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하는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로 널리 알려졌다. 박달재 정상에 가면 경상도 선비 ‘박달’의 전설을 담은 비가 있다. 박달이 과거를 보러 가다 이곳에 들러 ‘금봉’이란 처녀를 만나 사랑을 나눈 뒤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과거에 낙방해 돌아오지 않자 기다림에 지친 금봉이 목숨을 잃었고, 뒤에 소식을 접한 박달마저 금봉의 허상을 좇다 박달재에서 떨어져 숨졌다는 내용이다. 제천시청 누리집에도 이 전설이 소개돼 있다.
이 박달재 전설이 거짓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권순긍 세명대 미디어문화학부 교수는 최근 낸 ‘박달재 전설 형성과 울고 넘는 박달재’ 논문(고전문학연구 46집 게재)에서 “박달재 전설은 가수 반야월(1917~2012)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박달재 전설은 반야월이 1946년 ‘남대문 악단’을 이끌고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다 박달재 정상에서 이별하는 남녀를 보고 만든 노래 ‘울고 넘는 박달재’에 뿌리를 둔 이른바 근대전설에 불과하다. 노래가 유행하면서 전설로 굳어졌지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박달재 전설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짚었다. 우선 전설에 등장하는 선비 ‘박달’과 처녀 ‘금봉’의 허구성을 들었다. 박달재의 ‘박달’은 박달나무를 뜻하는데 이름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조선 후기 문신 학고 김이만(1683~1758)의 시 ‘단령’(檀嶺·박달재)을 근거로 들었다. 또 ‘금봉’은 반야월이 좋아했던 춘원 이광수(1892~1950)의 소설 <그 여자의 일생>의 여주인공 이름을 노래에 넣은 것인데 전설의 주인공으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허구의 전설을 바탕으로 시가 제천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박달이’와 ‘금봉이’로 정한 것은 물론, 박달재 테마 공원, 악극·영화 등을 제천의 이미지로 삼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천시는 2012년부터 15억원을 들여 박달재 정상에 반야월기념관을 지으려다 제천지역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포기하기도 했다.
권 교수는 “‘결전 태평양’, ‘조국의 아들 지원병의 노래’ 등 친일 군국가요를 짓고 부른 반야월이 만든 신파 망령을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끄집어내는 것도 문제다. 박달재 전설은 같은 근대전설, 신전설인 ‘아리랑’처럼 민족 저항의 정체성을 담은 게 아니라 필연성을 상실한 채 어설프게 조작됐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지역의 상징과 문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밝혔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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