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이르는 한 가족이 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1가 풍물놀이연구소에 모여 하루 앞으로 다가온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조성빈, 최동혁, 김복환, 최진숙, 둘째 줄 왼쪽부터 유현우, 조연진, 유건우, 최진규.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70대 할머니부터 초등생 손자까지
최동혁씨네 10명 매주 장단 맞춰
임종앞둔 바깥사돈 위해 공연하기도
오늘 어머니 위한 첫 공개무대
최동혁씨네 10명 매주 장단 맞춰
임종앞둔 바깥사돈 위해 공연하기도
오늘 어머니 위한 첫 공개무대
“하늘 보고 별을 따고 땅을 보고 농사짓고 올해도 대풍이오, 내년에도 풍년일세.”
김복환(76)씨의 장구 소리에 큰아들 최동혁(49)씨와 막내딸 최진숙(45)씨가 보조를 맞췄다. 동혁씨의 아들이자 김씨의 친손자인 진규(16·중학교 3년)군은 장구채를 잡고 뒷줄에 섰다. 진숙씨의 큰딸 조연진(15)양은 장구를 맡았고, 막내아들 성빈(13)군은 커다란 징채를 돌렸다. 김씨의 둘째딸 최동숙(48)씨의 큰아들 유건우(16)군은 꽹과리를 맡아 가족들의 사물놀이를 이끈다. 동생 현우(14)군은 북을 쳤다. 박자가 빨라지자 흥이 고조되고, 가족들 어깨도 들썩였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대낮같이 밝은 달아 어둠 속의 우리들을 비춰주네.” “어이.”
16일 오전 서울 성동구 풍물놀이연구소. 70대 할머니부터 초등학생 손자까지 한 가족 ‘3대’가 모여 하루 앞으로 다가온 첫 ‘가족사물 발표회’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들이 사물놀이를 시작한 건 2008년부터다. 각자 생활에 바쁜 가족들이 공통의 취미를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최진숙씨는 “텔레비전에서 해외를 다니며 사물놀이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을 인상 깊게 보고 같이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가족들에게 제안했다”고 말했다. 연습은 집안의 ‘큰 어른’인 김씨와 그의 아들과 두 딸, 사위, 손주 5명 등 모두 10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7년간 거의 매주 토요일에 수업을 받았다. 김복환씨는 장구 연습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첫날 배우는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못 하겠다고 했더니 손주들이 제가 없으면 안 된다며 일일이 가르쳐줬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온 거예요.”
한 건물 2층과 3층에 사는 이들은 시간이 날 때면 모여 연습을 했다. 옆집이 소음 때문에 힘들까봐 장구 대신 테이프를 붙인 ‘박스’를 두드렸다. 다른 단체들과 함께 하는 작은 무대에도 여러번 섰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무대는 ‘아버지를 위한 공연’이었다. 2010년 폐암에 걸린 최씨의 시아버지를 위해 작은 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가족들이 시아버지만을 위한 공연을 했어요. 눈물을 흘리며 공연을 끝냈더니 시아버지가 주섬주섬 50만원을 꺼내 주시더라고요. 아이들 교육비에 보태 쓰라시며….”
이번 ‘가족 사물놀이 발표회’는 어머니 김씨를 위한 공연이다. 최씨는 “어머니가 지난해 9월부터 위가 안 좋아져서 거의 죽만 드신다. 어머니와 가족을 위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행복한 어울림 가족 사물놀이’라는 공연 이름도 가족회의에서 투표로 정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성빈군은 “7년 동안 어울리며 가족이 행복해졌다”며 공연 이름을 설명했다. 이들을 가르친 오광렬 풍물놀이연구소장은 “대가족이 사물놀이를 함께 하는 건 처음이다. 실력이 좋아지는 것을 보며 흐뭇했다”고 말했다.
사물놀이는 서로 ‘배려’하지 않으면 공연이 힘들다고 한다. 서로 눈을 맞추고 교감하며 박자를 맞춰 나가야 한다. 가족들은 “사물놀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2시간 남짓 마지막 공연 연습이 끝나고, 큰아들 최동혁씨는 노모의 손을 꼭 잡았다. 최씨는 “어머니, 아이들과 같이 오래오래 사물놀이를 배우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들의 첫 공연은 17일 오후 2시 서울시립성동청소년수련관 무지개극장에서 열린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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