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탄압에 국가개입 증거 없어”
1980년대 미국계 업체의 폐업을 앞당긴 노동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국가가 개입해 폐업을 유도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문준필)는 박아무개씨 등 5명이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회사가 폐업하면서 해고한 사실을 인정하라”며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박씨 등은 1982년 7월 구로공단 전자부품 업체인 콘트롤데이타코리아에서 해고됐다. 회사는 노조의 파업 직후 폐업하며 직원들을 해고했다.
노조는 그 전해 12월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거부하자 파업을 했다. 면담을 요구하며 노동부장관실 진입을 시도한 박씨 등 3명은 즉결심판에서 구류 3일 처분을 받았다. 박씨 등은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구류 처분을 받은 것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반면 해고된 것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당시 외신 보도와 주한미대사관 자료를 보면, 회사는 반도체 기술 혁신에 따른 적자 누적과 수지 악화로 공장 폐쇄를 예정하고 있었는데 노사분규로 폐업 시기를 앞당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 활동을 원천 봉쇄하려고 폐업을 단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노동부가 노동운동가들의 취업을 막으려고 만든 블랙리스트에는 이 회사 노조원 33명도 포함됐지만, 작성 시점이 폐업보다 다섯달 뒤여서 폐업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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