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이 22일 오후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등 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어제(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이석기(53)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7명의 내란 선동 및 국가보안법(찬양·고무) 위반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내란을 ‘음모’하진 않았지만 ‘선동’은 했다는 결론입니다.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음모를 해서 콘텐츠를 만들지 않았는데 무엇을 가지고 선동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누리꾼들도 ‘내란 음모’와 ‘내란 선동’ 혐의의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가 모두 같은데 유무죄가 갈린 것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입니다. "음모가 없는데 그 음모를 선동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선동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와 같은 반응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내란선동죄는 내란음모를 선동할 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내란을 선동할 때 성립하는 것이고, 내란선동죄가 내란음모의 성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기초로 이 같은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2명이 음모하지 않아도 각각 선동할 수 있다’는 법리를 내세워 이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대법관 3명은 소수 의견을 내어 “다수 의견이 ‘내란범죄 실행의 합의에까지 이르지 않았고, 합의에 이르렀다고 쳐도 내란으로 나아갈 실질적 위험성이 없다’며 내란음모죄는 무죄라면서도 내란선동죄는 인정해 의아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음모와 선동의 개념부터 하나씩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 예비·음모, 선전·선동이 무엇인가
우선 ‘음모’, ‘선동’이 법률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범죄는 실행 단계에 따라 ‘기수-미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범죄에 착수해 성공하면 ‘기수’, 실패하면 ‘미수’가 됩니다. 부잣집 담을 넘었지만 강도짓은 못한 채 붙잡히면 ‘미수’, 집 안에 들어가 집 주인에게 칼들이대고 물건을 훔쳐오면 ‘기수’가 됩니다.
‘예비·음모’는 ‘기수-미수’보다 이전, 즉 범죄 실행 착수에 이르지 않은 전 단계의 행위들입니다. ‘음모’는 범죄를 하자고 모의하는 것, ‘예비’는 범죄를 준비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강도 3~4명이 ‘부잣집을 털자’고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결의하는 행위는 ‘음모’, 강도짓에 사용할 흉기를 사고 부잣집 주변을 정찰하는 등의 행위는 ‘예비’로 볼 수 있습니다.
‘음모·예비·미수·기수’가 특정 범죄의 실행 과정을 시간적으로 구분하는 개념인데 반해 ‘선전·선동’은 시간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선전’은 범죄 동조자를 확산시키기 위해 범죄행위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는 행위, ‘선동’은 타인에게 정당한 판단을 잃게 하여 범죄를 마음먹게 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음모·예비·미수·기수’ 전단계에서 가능합니다.
‘예비·음모’나 ‘선전·선동’을 처벌할지 여부는 판단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실제로 범죄에 착수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형법은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예비·음모’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형법 제28조). ‘선전·선동’ 행위도 국가적 법익이 걸린 내란죄·내란목적살인죄·간첩죄 등에 대해서만 극히 예외적으로 처벌합니다.
■ 선동은 되고, 음모는 안 된다?
대법원의 내란음모 무죄·내란선동 유죄 판결 논리는 이렇습니다.
‘이들이 소망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면 내란이다. 그러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에 합의하지 못했고, 합의했다 해도 현실적으로 이들의 소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내란 음모 무죄). 다만, 음모 행위와는 별개로, “소망(내란)을 이루자”고 선동했는데, 이 행위는 청중의 마음속에 범행 결심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내란 선동 유죄)’
이들의 선동으로 인해 청중이 범죄를 마음먹을 수 있고, 그 범죄가 실현되면 내란이라는 뜻입니다. 대법원은 “내란 선동 단계에서는 내란 실행 행위의 시기와 장소, 대상과 방식, 역할 분담 등 주요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없고 청중에게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인복, 이상훈, 김신 대법관 의견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내란 음모는 물론 내란 선동도 무죄로 판단하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내놨습니다.
‘이들이 소망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져도 내란이 아니다. 심지어 소망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에 합의 못 했고, 합의했다 해도 이들의 소망(이 소망 자체도 내란으로까지는 인정되기 어려운 상태)조차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내란 음모 무죄). 음모 행위와는 별개로, ‘소망(내란에 이르지 못한 내용)을 이루자’고 선동했는데, 선동 내용도 구체적이지 않다(내란 선동 무죄).’
범죄를 마음먹게 유발할 위험도 적고, 선동 내용이 추상적이라 선동대로 실현돼도 내란이라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객관적으로 보아 내란의 주요한 부분에 관해 개략적으로라도 특정된 선동이라는 것이 명백히 인정되고, 그 선동에 따라 청중이 내란으로 나아갈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내란선동죄가 성립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다수 의견이 내란선동죄 성립 요건을 넓혀둔 것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이들은 “내란음모죄의 구성 요건을 충족 못 해도 별도 구성 요건 없이 곧바로 법정형이 동일한 내란선동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다수 의견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며 “내란선동죄도 내란음모죄처럼 객관적 명확성과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돼야 한다. 그래야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전문가 평가 엇갈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3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내란음모죄와 내란선동죄 모두 내란 범죄를 저지르기 전 준비단계를 벌하는 것이다. 따라서 둘 모두 범죄 실행으로 나아갈 실질적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준비 단계 행위를 처벌하는 건 예외적이기 때문에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처럼 선동죄 요건을 완화시키면 처벌 범위가 너무 넓어져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이들의 소망이 내란에 이른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며 ‘소수 의견’에 손을 들어주면서도 “(소수 의견에서 말하고 있는) ‘법정형이 동일하므로 선동과 음모가 유사한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뇌물을 수수·요구·약속한 경우도 행위는 다르지만 형량은 같다. 선동·음모가 다른 행위지만 같은 형량으로 처벌하겠다는 건 입법자의 뜻이다. 판사는 선동은 선동대로, 음모는 음모대로 각각의 뜻에 맞춰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대검찰청 연구관 출신 한 변호사도 “음모는 두 사람 이상이 의견을 합치하는 것이고, 선동은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음모보다 선동의 내용이 덜 구체적이어도 된다는 다수의견이 타당해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음모는 목적이 있어야 하지만, 선동은 목적이 없어도 처벌받는다. 다만, 선동의 내용이 내란이라고 볼 만한 내용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리는 이렇게 관점에 따라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