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일기장’ 서비스 뒤늦게 인기
사진 올릴 수 없고 이모티콘도 불가
사진 올릴 수 없고 이모티콘도 불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 소통에 지친 영혼들이 늘어나면서 ‘비밀 일기장’ 서비스 로피피닷컴(▶관련 링크 : ropipi.com) 사이트가 뒤늦게 인기를 끌고 있다. 2013년 1월 오픈한 로피피닷컴은 입소문을 타고 지난해 사용자가 1000명으로 늘더니, 올 들어 이용자가 2026명으로 급증했다.
로피피닷컴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글을 쓸 수 있는 텍스트 상자’ 하나다. 사진을 함께 올릴 수 없고 이모티콘 사용도 불가능하다. 페이스북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인 태깅도 뺐다. 실제로 주소창에 ropipi.com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누르면 흰 배경에 글을 쓸 수 있는 텍스트 상자가 덩그러니 뜬다. 왼쪽으로 날짜가 보이고, 박스 안에는 희미한 글자로 ‘어서 와요. O OO, 오늘의 일기를 쓰세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담백한 서비스는 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 로피피닷컴을 만들고 운영하는 이는 ‘충격 고로케’와 ‘일간워스트’를 만든 서른한 살의 프로그래머 이준행씨다.
이씨는 23일 오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일기장처럼 쓰는 분들이 많았는데 어느 날 회사 직원들이 사적 계정을 알게 되면서 SNS 계정을 삭제하는 사례들이 많았다”며 “온라인에서 비밀 일기 쓸 분이 10명 정도 계시면 사이트를 열겠다고 말했는데 호응이 있어서 만들었다”고 개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무리 꽁꽁 숨겨둔 일기장도 엄마가 열어 보면 유출을 막을 수 없는 세상에서 온라인에 저장하는 글이 어떻게 ‘비공개’로 기록될 수 있는 걸까. 이씨는 “기술적으로만 설명하면 명백하게 비공개라고 할 수 없지만, 자신만 글을 볼 수 있다는 개념에서 비밀 일기”라고 말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하다 보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는 친구의 친구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은 글까지 공개되고 얽히게 된다”면서 “로피피닷컴이 ‘공개 공유의 피로감’을 덜어줄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이어 “최소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일기처럼 쓰다가 낭패 보지 말자는 목적은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만들고 운영하는 사이트는 이뿐만이 아니다. 두 가지만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북키(▶관련 링크 : boooki.com)’와 ‘일간워스트(▶관련 링크 : www.ilwar.com)’를 꼽았다. 북키는 개인의 독서 기록과 서평 등을 공유하는 사이트다. 일간 워스트는 건전한 소통이 오가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그는 여러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얻는 수익으로 로피피닷컴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로피피닷컴에는 광고가 없다.
이씨는 “일기는 원래 노트에 쓰는 게 맞지만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글을 쓰는 게 익숙해 손으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걸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키보드로 자기 생각을 늘어 놓는 온라인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며 “요즘 입사 지원서를 보면 개인 SNS 계정을 적어서 제출하라는 곳이 많아 소셜 네트워크 안에서도 평판 관리를 해야 하고 감시를 당한다. 그럴 바에 어디 숨을 곳이 필요하면 로피피닷컴으로 도망오시라”고 웃으며 말했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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