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다 지난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전업체 모뉴엘이 불과 8억여원의 뇌물로 수조원대 ‘사기대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담뱃갑이나 비눗갑, 휴지 상자에 뇌물을 담아 전달하는 ‘신종’ 수법이 동원됐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는 모뉴엘이 7년간 허위 수출 실적을 제시해 시중은행 등에서 3조4000억원이나 대출을 받고, 이 과정에서 8억600만원의 뇌물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고 25일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밝혔다. 검찰은 모뉴엘이 1만~2만원 수준의 홈시어터 컴퓨터 가격을 200만~300만원이라고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수출액을 부풀리고 한국무역보험공사 쪽을 뇌물로 관리하면서 무역보험 한도를 늘려 은행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뉴엘의 로비가 집중된 2011~2013년 무역보험 한도는 8800만달러에서 2억8700만달러(약 3100억원)로 3배 이상 늘었다.
검찰은 박홍석(53·구속 기소) 모뉴엘 대표가 담뱃갑이나 비눗갑에 50만원짜리 기프트카드 10장을 넣어 주거나 휴지 상자, 와인 상자에 5만원권을 채워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뇌물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 그가 고급 룸살롱에서 한번에 1200만원의 접대비를 쓰기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계륭(61)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 등 무역보험공사 쪽 인사 3명과 한국수출입은행 직원 1명, 국세청 직원 1명 등 6명을 구속 기소하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미국으로 달아난 정아무개(48) 무역보험공사 부장은 기소중지했다. 허위 수출입신고 등 혐의로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진 박 대표와 신아무개(50) 부사장 등 모뉴엘 임원 3명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사기 등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모뉴엘이 은행에 갚지 못한 돈은 5500억원에 이르고, 이 중 무역보험공사가 보증한 금액은 3428억원이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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