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를 인멸해 ‘윗선’이 저지른 국가범죄를 무마하는 ‘꼬리 자르기’가 반복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선거 개입을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해 2월6일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1, 2심 이어 대법도 무죄 선고
“특정 후보 반대 또는 지지 의도 없었다”
관련 사건 4건 중 첫 대법 판결
“특정 후보 반대 또는 지지 의도 없었다”
관련 사건 4건 중 첫 대법 판결
지난 2012년 국가정보원의 댓글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시켜 대선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7)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9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김 전 청장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직원 컴퓨터의 분석 범위를 설정하고 결과를 판단하는 과정,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언론브리핑을 한 경위·내용을 종합하면, 김 전 청장이 특정 후보자를 반대 또는 지지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행위를 했다는 검사의 주장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2012년 12월 대선 사흘 전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 직후 밤 11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문재인 후보 지지·비방글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내용의 허위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해,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발표 시기와 내용에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대선에 개입할 의사는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능동적·계획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국정원 심리전단이 댓글 활동을 벌여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사건 4개 중 가장 먼저 선고된 대법원 판결이다. 인터넷 글과 트위터를 통해 정치관여·선거개입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원세훈(64)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 전·현직 간부의 항소심은 오는 2월9일 서울고법에서 선고된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외부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국정원 직원 김상욱씨와 정기성씨, 김용판 전 청장 사건 수사 과정에서 서울청 압수수색 당시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석팀장 박아무개 경감의 사건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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