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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댓글수사 은폐’ 범행은 있고 처벌은 없다

등록 2015-01-29 21:58수정 2015-01-29 21:59

증거를 인멸해 ‘윗선’이 저지른 국가범죄를 무마하는 ‘꼬리 자르기’가 반복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선거 개입을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해 2월6일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증거를 인멸해 ‘윗선’이 저지른 국가범죄를 무마하는 ‘꼬리 자르기’가 반복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선거 개입을 축소·은폐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해 2월6일 무죄 선고를 받은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박종식 기자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대선직전 허위발표’ 드러났지만
대법원, 김용판 무죄 확정
2012년 12월 대선 직전 국가정보원의 댓글 여론 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축소 발표해 대선에 영향을 미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7)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경찰이 사건 실체와 반대되는데다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수사 결과를 투표일을 만 이틀 남기고 한밤중에 발표한 심각한 사건인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게 됐다. 검찰의 미온적 수사와 사법부의 소극적 판단이 겹치면서 경찰 수뇌부의 ‘정치 개입’은 면죄부를 받게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29일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대선에 개입할 의도로 허위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지시했다는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왜 대선 직전 허위 수사 결과를 발표했는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1·2·3심은 당시 경찰의 수사 방식 및 발표 내용과 시기에 모두 비상식적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는 없었다는 김 전 청장 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당시 수사 발표는 명백한 ‘오보’였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가 쓴 댓글을 확인하려면 인터넷 사이트 서버를 확인해야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만 뒤졌다. 여기서 인터넷 활동에 쓰인 40개의 아이디와 30만건의 인터넷 접속기록을 확인했다. 김씨가 이정희 당시 대통령 후보 비판 글을 쓰고, 문재인 후보 반대 글에 찬성 클릭한 사실 등을 확인했는데도 “박근혜·문재인 후보 지지·비방 글을 썼는지만 확인해야 한다”며 이런 단서들을 무시했다. 40개 아이디로 무슨 글을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사 대상을 인터넷(서버)으로 옮겨가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버 압수수색도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경찰청은 그해 12월16일 밤 11시께 ‘국정원 직원 불법선거 운동 혐의사건 중간 수사 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어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공표했다. 대선 후보자 텔레비전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댓글 증거도 못 내놓고 있지 않냐”며 문재인 후보를 공격한 직후였다. 경찰의 행태는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짙게 묻어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1·2·3심 어느 재판부도 이 부분을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1심은 “발표 내용과 시기에 아쉬움이 든다. 분석의 범위와 관련된 쟁점을 분명히 부각시켜 이를 기초로 수사가 확대될 여지가 있음을 밝히는 등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다”고만 언급했다.

2심도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수사 결과 발표가 국정원 직원에 관한 것일 뿐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것이 아니어서 특정 후보자에 대한 당선·낙선 목적이 있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특정 후보자나 후보자와 동일시될 수 있는 자’와 관련돼야만 (당선 또는 낙선의) 목적의식이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항소심 판단에 대해서는 “법리적으로 적절치 않다”면서도, “공소사실 입증이 부족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므로 상고를 기각한다”는 짧은 설명만 내놨다.

법원이 소극적 판단을 하게 된 데는 검찰의 역할도 있다. 검찰은 서울경찰청이 댓글 수사의 주무 팀인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분석 결과물을 건넨 시기를 잘못 기재하는 등 오류를 범해 1심 재판부로부터 “공소사실이 엉성하고 여러 모순이 있다”고 지적받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를 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 의혹으로 낙마하면서 댓글 사건 수사는 큰 장벽을 만났다. 김진태 현 총장이 취임한 뒤 수사팀은 사실상 좌천당했고, 검찰은 댓글 사건이 불거진 12월11일부터 경찰이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한 16일까지 새누리당 핵심 인물과 국정원 고위 관계자, 서울경찰청 간부 등이 빈번하게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재판부에는 이를 밝히지 않은 채 통화기록만 제출했다.

김 전 청장이 수사팀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명백히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내용과 (최종) 수사 결과가 다름에도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 사법부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판단하는지 답답하다”고 밝혔다. 반면 최종 면죄부를 받은 김 전 청장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역사 앞에 낱낱이 밝히겠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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